둘은 낳아야 미래 있다 [2] 늙은 일본

입력 2009.05.06 02:54 | 수정 2009.05.06 09:02

이웃 나라의 실패… 10년 후 우리 모습인가
2300가구 아파트 단지에 초등 입학생은 5명뿐… 경제도 늙어 차(車)판매 급감
20년전 '출산율 1.57' 쇼크후(後) 막연한 출산장려책만 내놔 "저예산이 저출산 낳은 셈"

지난달 28일 오후 도쿄 외곽 히가시나카노(東中野) 소학교. 닫힌 철문 너머 학교 게시판에 '고마워, 안녕 히가시나카노 소학교'라고 쓰인 도화지가 붙어 있다. 바로 옆 표지석에는 1932년 개교한 이 학교를 지난 3월 31일자로 폐교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운동장에는 인적이라곤 없다. 폐교 전부터 걸어놓은 듯한 '고이노보리'(장대 위에 잉어 모양을 만들어 단 장식) 10여개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도쿄도(都)는 이 지역 젊은 주민층이 줄어 학생 수가 100여명 수준으로 떨어지자 폐교하고 학생들을 인근 3개 학교로 전학시켰다. 주민 마쓰야마 모토히로(75)씨는 "주민과 졸업생, 학부모들이 모두 폐교에 반대했지만 소자화(少子化·저출산)가 시대 흐름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학교처럼 문을 닫은 초등학교가 도쿄 시내에서만 2007년 10개, 2008년 8개, 2009년 5개다. 일본 총무성은 5일 일본의 15세 미만 어린이 수가 1714만명으로, 1년 사이 11만명 줄었다는 우울한 연례 소식을 발표했다. 28년 연속 감소세다. 일본 초등학생 수는 1981년 1192만명에서 2007년에는 713만명으로 줄었다.

저출산 여파로 폐교한 도쿄 외곽 히가시나카노 소학교 앞에서 주민 마쓰야마씨가 폐교 당시 상황을 말하고 있다. 철문 너머로‘고마워, 안녕 히가시나카노 소학교’라는 글이 눈에 띈다./도쿄=김민철 기자
'늙은 일본' 증후군

일본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34명. 2005년 1억2778만명을 정점으로, 이미 인구 감소에 접어들었다. 이대로 가면 2045년엔 1억명 밑으로 내려가게 된다. 일본 내각부의 기호 유키히사(木方幸久) 소자·고령화대책 담당관은 "올해는 금융 위기 여파로 출산율이 큰 폭으로 하락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일본은 사회 활력이 떨어지고 내수 시장이 침체하는 등 '저출산의 저주'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 국내 자동차 판매 대수는 2004년 585만대에서 2008년 470만대로 4년 사이 25%나 감소했다. 세계를 주름잡는 도요타자동차도 일본 내 판매는 4년째 감소 중이다.

자동차뿐 아니라 소매업, 교육·출판산업, 수송·물류산업, 소규모 서비스 산업들도 저출산으로 매출 감소를 겪고 있다. 도쿄 디즈니랜드도 최근 방문객 수가 눈에 띄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일본 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스즈키 도루(鈴木透) 실장은 "출산율 감소 여파는 일본 기술대국 기반 자체를 위태롭게 하고 있고, 사회보장 제도도 파탄에 빠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 히가시신주쿠(東新宿)역 근처 도야마(戶山) 아파트단지. 2300가구가 사는 이 단지 인구의 52%는 65세 이상 노인이다. 단지 안으로 들어서자 노인들이 곳곳의 벤치에 앉아 졸거나 조용히 얘기하고 있었다. 단지 안의 모든 것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현지 언론은 이 단지에서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단 5명이라고 보도했다. 이 단지 33동 자치회 아키바 마사카즈(67) 부회장은 "단지 안에서 1년에 50여명 이상의 노인이 고독사(孤獨死·가족이나 도움받는 사람 없이 혼자 사망하는 것)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늙은 일본'의 모습은 10~20년 후 우리의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도 2018년을 정점으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고, 노인 인구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2026년 초고령화사회(65세 이상 노인인구 20% 이상)에 진입하게 된다. 우리는 출산율이 1.19명으로 일본보다 빠른 속도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일·가정을 양립시키자"

일본 정부가 손 놓고 방치한 것은 아니다. 1989년 이른바 출산율 '1.57 쇼크'를 계기로 엔젤플랜(1995~1999년), 신엔젤플랜(2000~2004년), 아동·육아응원플랜(2005~2009년) 등 수많은 대책을 쏟아냈지만 인구 감소 추세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얼까.

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박사는 "일본은 예산을 많이 쓰지 않고 저(低)예산 위주의 정책을 펴면서 국민 계몽에 주력하다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출산장려 예산(2007년)은 GDP(국내총생산)의 0.83%(4조3300억엔)이다. 프랑스의 출산장려 예산이 GDP의 4.7%에 달하는 것과 비교가 안 된다. 이 박사는 또 "일본 정부가 저출산 대책은 많이 내놓았지만 종합적이지 못했고, 한번은 보육정책, 한번은 일·가정 양립, 최근에는 고용 문화 개선에 역점을 두는 등 계속 바꾸면서 어느 것 하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가부장적인 사회문화 요인도 있었다. 일본 남성들은 직장에 매여 장시간 근무하는 경우가 많고, 일하는 여성들은 일과 출산·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다.

최근 일본 정부와 재계는 '일·가정 양립' 정책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일본 게이단렌(經團連)은 근로자들을 일찍 귀가시켜 가족과 함께 보내도록 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도 적극 호응하는 듯하다. 도쿄전력 노무인사부는 불필요한 잔업 시간을 없애기 위해 '퇴근시간 게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직원들이 책상에 4가지 색 카드 중 하나를 올려놓고 일을 하는 것이다. 흰색은 오후 6시, 황색은 8시에 퇴근하겠다는 식이다. 상사·동료들에게 퇴근 시간을 알리고,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하게 하려는 것이다.

정치권과 재계에선 이민을 수용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게이단렌 등은 노동력 부족과 내수 축소 등을 들어 이민정책 적극 수용을 주장했고, 자민당의 의원모임인 '외국인재교류추진의원연맹'도 지난해 "50년 내에 인구의 10%를 이민으로 채우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순혈국임을 자랑하는 일본이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이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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