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중화(中華)주의에 중독… 세계 정세 인식 못해"

    입력 : 2009.05.06 03:05 | 수정 : 2009.05.06 06:39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책 낸 이삼성 한림대 교수

    이삼성 교수는“동아시아 2000년을 다루는 것은 버겁고 주제넘은 일이었으나, 국 제정치학적 관점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했다./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근대 서양은 세력이 비슷한 유럽 국가끼리는 주권적인 평등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발전시켰지만, 비(非)서양 세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식민주의적 질서를 강요했다. 반면 '중화(中華) 질서'로 불리는 동아시아의 전통 국제관계는 공식적 위계(位階)를 전제하지만, 약소 사회의 내적 자율성을 보장하는 제3의 모델을 창안해 낸 것이다."

    이삼성(51) 한림대 교수가 동아시아 2000년의 역사를 국제정치학적 시각에서 정리한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한길사)를 냈다. 전근대 시대를 다룬 1권과 19세기·20세기 초를 묶은 2권을 합해, 1500쪽이 넘는 대작이다. 태평양 전쟁과 6·25 전쟁 등 20세기를 다룬 3권도 올 10월쯤 출간한다.

    이 방대한 저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서구학계가 식민질서의 변형 정도로 간주해 온 중화질서가 실제로는 동아시아에서 강대 세력과 약소 사회들 간의 전쟁과 평화를 규율하는 국제적 규범과 질서였다고 평가하는 대목이다. 이 교수는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착취적 식민주의 질서를 피하고, 조공(朝貢)과 책봉(冊封) 체제라는 국제적 규범을 통해 약소 사회가 자율성을 유지하는 평화 체제를 개발한 성과를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이 교수가 중화체제를 긍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중화체제에 대한 과도한 몰입은 현실감각을 떨어뜨렸다고 지적한다. 거란과 몽골, 후금(後金)의 침략을 초래한 데는 우리 집권층의 중화주의적 대외인식과 행동 패턴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중화주의를 형이상학적, 우주론적 차원까지 확장시켜 거기에 올인함으로써 중화질서 바깥에 있는 세력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들과 공존을 모색하는 논리나 행동 양식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인조 정권이 이미 무력한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론에 집착, 신흥 세력 후금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병자호란의 참화에 빠져든 것이 대표적 사례다. 정묘호란을 겪고도 후금의 실력을 파악하고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커녕 군사적 대비조차 소홀히 한 것은 중화질서라는 이데올로기 중독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우리 역사에서 명분론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치는 것은 항상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2001년 800쪽이 넘는 저서 《세계와 미국》을 썼던 이 교수는 한국 사회 이념적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한·미 동맹에 대해서도 "미국을 선(善)이나 악(惡)으로 보는 근본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전략적 사유의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친미와 반미, 모두 지나치게 이데올로기화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삼성 교수는 "21세기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한·미 동맹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이외의 국가에 대해서도 지적 창의력과 관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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