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했던 유기농에 '스타일'을 입히다

입력 2009.05.06 03:06

유럽 유기농 시장은 지금 명품(名品) 뺨치는 매장·포장
거친 인상 없애려 노력 식품 코너 옆엔 식당… 조리법 보고 배우도록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세계 유기농 식음료 시장. 미국, 유럽 9개국의 유기농 음식료 시장은 이미 400억달러(2007년말 기준)를 훌쩍 넘어섰다. 최근 세계적 경기 침체로 유기농 시장성장세가 추춤할 것이란 전망도 있지만, 유기농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가처분 소득이 비교적 넉넉한 데다 유기농과 일반 제품의 가격차가 점점 작아지고 있어 시장은 안정적으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이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유럽 유기농 매장의 경쟁이 뜨겁다. '유기농은 순박하고 투박하다'는 생각부터 깨지고 있다. 매장과 패키지는 명품 디자인 뺨친다.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을 팔기 위해 아예 소비자들의 교육까지 맡아서 하는 곳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유기농 이제 교육이다-이탈리아 토리노의 '이탈리(Eataly)'

'이탈리'는 이탈리아 북서부 도시 토리노(Torino)에 지난 2007년 문 연 대형 마트다. 슬로푸드에 컨설팅을 의뢰해 전통 방식대로 생산한 제품 2만여 가지를 판매한다. 유기농 제품이 많다. 개장 첫 해만 250만 명이 찾을 만큼 폭발적 주목을 받았고, 밀라노 2호점과 일본 도쿄 내 2개에 이어 연내 미국 뉴욕 한복판인 피프스 애비뉴(Fifth Avenue)에 점포를 연다.

‘이탈리’소시지·치즈 코너 식당./김성윤 기자
술 공장을 개조한 이탈리 매장은 지상 2개 층과 지하 1개 층을 합친 총 매장 면적이 1만1000㎡(약 3300평). 까르푸(Carrefour) 등 유럽의 대형 마트와 비교하면 넓은 편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대형 마트 매장은 진열대에 상품을 빽빽하게 채워 놓지만, 이탈리는 매장 한복판에 바(bar) 형태 식당을 잡아 두고, 진열대는 벽을 따라 설치했다. 한결 공간이 넉넉해 보인다. 고기·치즈·빵·와인 등 코너마다 식당이 하나씩 붙었다. 고기 코너에 붙은 식당에서는 스테이크를, 햄·소시지 코너에서는 서너 가지를 빵과 함께 접시에 담아 낸다. 간단한 조리법이다. "재료가 좋으면 요리를 많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게 이 식당과 매장의 철학이다. 맥주, 와인매장 바에서는 각종 맥주와 와인 시음이 가능하다. 접시당 7~12유로쯤. 이탈리아에서 일반적인 가격이다. 지하 1층에는 미슐랭 별 1개를 얻은 '귀도(Guido)'까지 총 9개 식당이 이탈리 안에 있다.

밀보씨는 "음식을 판매할 뿐 아니라 어떻게 먹는지 배우는 공간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목에는 창업자 오스카 파리네티(Farinetti)씨의 고집이 엿보인다. 대형가전 유통업체 사장이었던 그는 음식을 공부한 뒤, 기존 사업을 접고 2003년 이 매장을 열었다. 그가 구상한 건 '음식계의 이케아(IKEA)'. 이케아가 좋은 디자인을 대중에게 보급했듯, 이탈리에서는 좋은 먹거리를 대중에게 공급하겠다는 뜻이다.

지하매장의 3분의 1은 '프레시디아(Presidia)' 제품이 판매된다. '프레시디아'는 전통방식대로 음식을 만드는 각국의 장인과 농장, 공방을 지원·육성하는 프로그램. 이곳에서는 프레시디아 지원을 받는 장인들이 만든 와인, 치즈, 올리브오일, 식초 등이 팔리고 있다. 파리네티 대표가 매장의 식음료 컨설팅 비용 대신 친구 카를로 페트리니(Petrini·슬로푸드 창시자)에게 내줬다는 이 공간에 서면 유럽 '음식 장인'들의 고집 같은 것이 느껴진다.

‘데일스포드 오가닉’매장 내부./데일스포드 오가닉 제공
■유기농 이제 디자인이다-영국 데일스포드 오가닉(Daylesford Organic)

영국 런던 핌리코(Pimlico)에 있는 '데일스포드 오가닉'은 명품 매장 같은 분위기이다. 벽, 바닥은 물론 대형 테이블, 개방형 냉장고 외장까지 모두 흰색 대리석이다. 잼, 샐러드 드레싱이 마치 값비싼 명품 브랜드 제품인양 넉넉한 공간 속에 돋보이게 배치된다. 유기농이라고 하면 '몸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투박하고 촌스러운 음식이나 물건'이라는 선입견은 깨진다.

영국 귀족인 캐롤 뱀포드 여사(Lady Carol Bamford)가 자신의 영지인 데일스포드에서 시작한 유기농 농사가 2003년 데일스포드 오가닉이란 회사로 새로 태어났다. 런던에 첫 매장 이후 하비니콜스(Harvey Nicols) 백화점, 셀프리지스(Selfridges) 백화점, 노팅힐(Nottinghill) 매장, 슬론스퀘어(Sloane Square) 매장 등 영국 안에서 8개 매장을 냈다. 올해는 한국에 매장을 오픈하면서 처음으로 해외로 진출했다.

‘데일스포드 오가닉’우유 용기.

'뚝배기보다 장맛'이란 한국 속담은 데일스포드 오가닉에선 통하지 않는다. 데일스포드 오가닉 홍보 담당 카밀라 윌슨(Wilson)씨는 "우리 제품을 모르는 소비자라면 겉포장만 보고 물건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제품이 담긴 용기의 디자인이나 포장이 제품의 진정한 수준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선으로 구성된 잼이나 샐러드 드레싱 용기, 투명 라벨, 흰색이나 갈색으로 통일된 글자 등은 '유기농은 거칠다'는 인상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패키징에서도 유기농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주려한다. 자연분해 소재는 기본. 우유 용기의 경우, 일반 플라스틱이 아닌 자연분해되는 탄산칼슘(calcium carbonate) 소재를 썼고, 딱 접으면 납작해지는 팩 형태다. 이 용기는 '크리에이티브 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D&AD상'을 2006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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