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낳아야 미래 있다] "우리가 재벌이에요? 또 낳게?"

조선일보
입력 2009.05.05 02:59

한국의 부모들 왜 애 낳기 꺼리나 / 24명 심층면접조사 한달 사(私)교육비 100만원 넘어
맞벌이 경우 퇴근때까지 애 맡길곳 없어 학원 보내… 주위 배려없는 것도 고통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국가적 재앙 수준까지 떨어졌다. 2008년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수)이 1.19명으로 내려갔고, 올해는 1.0명을 밑돌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만약 출산율 1.0명이 이어진다면 2018년부터 인구 감소로 돌아서 300년 후엔 지구상에서 한국인이 완전 소멸하게 된다. 현재 인구가 유지되려면 출산율이 2.1명은 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프랑스·스웨덴 등 저출산에 시달리던 선진국들은 국가 차원의 총력전을 펼쳐 마(魔)의 장벽으로 불리는 '출산율 2.0명'을 돌파했거나 근접했다. 우리는 어떻게 출산율 2.0의 장벽을 돌파해 나라가 쪼그라드는 운명을 피할 것인가.

"애를 영어 유치원에 보냈는데 그게 끝이 아니어요. 집에서 학습지 하고, 태권도 가니 드는 돈이 엄청나요. 하나 더 낳고 싶어도 재벌 아닌 이상 둘 셋 못 낳겠다 싶어요."

주부 김하나(31·서울 강남구)씨는 "일곱살짜리 하나 키우는 데도 지난달 바이올린 시작하자 교육비가 월 140만원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주위를 보면 대부분 그렇다"고 했다.

한국인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일까. 본지가 ▲주부 ▲기혼 여성 직장인 ▲남성 직장인 등 3개 그룹의 24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조사(FGI)를 한 결과 과중한 사교육비와 보육비 부담, 열악한 육아 여건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가 확실한 출산 지원책을 펴는 등 여건만 갖춰진다면 아이를 더 낳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본지와 보건복지가족부가 함께 여론조사기관 '월드리서치'에 의뢰해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민 의식 조사에서도 평균 2.54명을 이상적인 자녀수라고 답변했다. 정부 정책에 따라 출산율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였다.

"애 키우는 데 돈이 너무 든다"

24명의 면접 조사 대상자들이 애를 낳지 않는 첫번째 이유로 드는 것이 사교육비와 경제적 부담이었다. 직장 여성 장미혜(31)씨도 "아이 둘을 어린이집과 유치원 보내고, 특별활동하고 태권도 보내면 한달에 백만원 이상 들어간다. 너무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불만도 많았다. 주부 장미혜(31)씨는 "육아기간 동안 개인 생활이 없는 것이 제일 힘들다. 그래서 친구들과 관계도 점점 멀어졌고, 우울증이 오더라"고 말했다. 직장 여성 정은희(36)씨는 "애를 찾으려면 오후 6시 칼퇴근해야 하는데, 하루하루 사는 것이 너무 숨가쁘다"고 말했다.

특히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가 '마(魔)의 고비'라고 했다. 정은희씨는 "차라리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오후 7시 반까지 맡아준다. 초등학교 들어가면 3월은 오전 10시, 10시 반에 끝나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고 호소했다. 맞벌이의 경우 퇴근시간까지 아이 맡길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보낸다고 했다.

국민 의식 여론조사에서도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정책으로 '영·유아 보육비 지원 확대'가 30.9%로 가장 높았고, '사교육비 경감 지원'이 23.4%로 뒤를 이었다.

"임신·육아 여성 배려 안 한다"

임신·육아 여성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원망도 많았다. 여론조사에서 '직장에서 자녀 출산·양육에 대한 배려를 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은 28.8%에 그쳤다.

주부 양현숙(34)씨는 "회사 다닐 때 임신했는데 야근이 많았고 토요일 일요일도 없을 때가 있었다. 결국 애를 낳으며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주부 김나영(36)씨도 "임신했는데 같은 팀원들이 담배를 피워대 너무 힘들었다. 결국 임신 6개월 만에 사직서를 냈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출산휴가를 쓰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육아휴직 쓰는 것은 아직 눈치 보이는 분위기라고 했다.

참석자들은 처음에는 자녀를 2~3명 계획했으나 초산 후 계획을 바꾼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세살 아기를 둔 주부 임민혜(31)씨는 "세명은 낳자는 생각을 갖고 결혼했는데 애 키우다 보니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생각이 확 달라졌다"고 말했다. 기혼 남성 박준형(34)씨도 "첫 애를 낳으면서 결혼을 늦게 할 걸 후회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여건만 되면 더 낳겠다"

그러나 참석자 중 상당수는 애가 주는 기쁨이 너무 커서 국가 지원이 늘어 육아 부담을 느끼지 않는 환경만 된다면 아이를 더 낳을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주부 오정혜(37)씨는 "국가 지원이 더 확실해지면 셋까지는 둘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지원을 체감할 수 없고, 실질적인 도움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응답이 많았다. 여론조사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저출산 대책인 '새로마지플랜2010'에 대해 모른다는 응답이 71.2%였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