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신종(新種)독감'은 이미 '신종(新種)'이 아니다

조선일보
  • 박승철·삼성서울병원 교수 신종인플루엔자 대책위원장
    입력 2009.05.04 03:18 | 수정 2009.05.06 10:25

    이번 독감은 축구경기와 비슷하다 웬 날쌘돌이 하나가
    온 경기장을 휘저었다 그러나 그는 골 득점력이 형편없다

    박승철·삼성서울병원 교수 신종인플루엔자 대책위원장

    전염병은 사람과 병균이 목숨 걸고 대결하는 전쟁이다. 작게는 각개전투이며 크게는 세계대전이다. 우리는 신종인플루엔자와 각개전투·세계대전을 동시에 치르고 있는 중이다. 침공군은 캘리포니아균종으로 돼지의 새로운 변종 독감바이러스다. 4월 13일 멕시코에서 첫 사망자를 낸 이후, 3대륙 13국을 침공해 366명의 환자와 10명의 사망 피해를 냈다.

    한국에는 확진 1명, 추정 2명의 환자가 있다. 독감 대유행(pandemic)은 신형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 다수의 환자 발생, 강한 독성이 있어야 하며, 예방 백신은 없어야 하는 4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침공군인 캘리포니아바이러스는 신종임이 분명하며,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이므로 예방백신은 없고, 겪어본 사람이 없어서 인체면역도 없다. 사람들의 방어력이 없어서 전 세계를 마냥 휘젓고 다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독성이다. 치사율이 AI 60%, 사스(SARS)가 10%이며, 이번 신종 독감은 멕시코에서만 1600명이 감염돼 150명이 사망해서 단순계산으로는 10%대에 이른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보면, 두 가지의 통계상 문제점이 있다. 1600여명의 감염사례 중 70여명만 진성으로 확진됐고 150명의 사망자 중 7명만 진성으로 판명됐다. 신종독감 아닌 환자들이 다수 포함되었다는 뜻이다. 사망자는 거의 모두 멕시코인이다. 독성은 지역이나 인종을 가리지 않고 인명피해를 내야 독성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신종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인종차별을 할 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독감은 약한 A급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한국에 신종독감 확진 1명과 2차로 추정환자 2명이 발생한 의미는 무엇인가?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신종독감 발생국이며, 국내전파가 시작됐다는 뜻이다. 명예로울 것은 없으나 크게 불안하고 부끄러울 것도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 방역진의 환자검색과 진단기술이 매우 우수하다는 것과 정부의 솔직한 자세가 칭찬받아야 한다. 우리는 신종독감에 대해서 이미 많이 알고 있다. 바이러스의 족보와 전파방식, 그리고 타미플루가 내성 없이 치료효과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사는 국가나 지구에서 어떤 독감이든 한번 시작하면 약 두 달간 유행하면서 끝이 난다. 그러나 아주 고약한 대유행은 더 큰 2차 유행이 몇 달 후 덮치기도 한다. 이번 독감은 '약한 A급' 태풍이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며, 재침략을 하더라도 그때는 이미 효과적인 백신이 준비돼 있을 것이다.

    이번 독감은 축구경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 멕시코가 월드컵에 출전했는데 웬 날쌘돌이 하나가 온 경기장을 휘젓고 다니는 상황이다. 분명 베컴 후예 같은 신인이 날아다니며 적진을 돌파하니 과연 그 선수 하나만으로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만하다고 모든 축구 감독들이 긴장해 있었다. 신인이라 대비책이 없다. 문제는 독성, 곧 골득점력이다. 화려하게 등장하고 골득점력이 통계상으로는 대단하나, 그것이 외국팀과의 경기에서가 아니라 멕시코 내의 지방팀과의 경기에서의 득점력이라면, 그리고 월드컵 예선에서 한 골도 못 넣었고 미국과의 경기에서는 그나마 자살골이었다면(미국 내 사망자 1명은 멕시코 어린이였다) 그 팀이 16강에나 들어가겠는가?

    전염병은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를 많이 보는 빈곤병이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위생상태가 나쁜 환경에서 잘 먹지도 못하고 중노동으로 과로하므로 몸이 허약하고 면역력이 약해서 전염병에 잘 걸리고 중하게 앓는다. 이번 독감이 1918년에 유행했다면 큰 피해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바이러스는 현대전에는 맞지 않는 약한 독성을 갖고 있다.

    '육체적 가난'도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7%가 60세 이상이다. 생리적으로 건강쇠퇴기에 접어들어서 전염병에 잘 걸리고 폐렴도 잘 걸린다. 암투병 중, 간경화 당뇨 등 만성질환자들도 면역력이 약해져 육체적 빈곤층에 속하게 돼 전염병에 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신종독감 발생국 국민으로서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신종인플루엔자는 우리 곁에 와서 이미 신종이 아닌 보통 독감이 됐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독감이라고 얕보아서는 안 된다. 일상적인 일이어서 큰 뉴스는 안 되지만 숨겨진 피해는 대단하다. 미국에서는 보통 계절 독감으로 1년에 3만여명이 사망한다.

    육체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도 예방수칙만 잘 지키고, 발병 시 지체하지 말고 병원에 간다면 이번 신종독감은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 우리나라 방역과 의료수준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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