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가문물국과 국가측량국은 지난달 만리장성(萬里長城)의 길이가 종전(6300㎞)보다 더 길어진 8851.8㎞라고 발표했다. 얼핏 '장성이 더 길어졌구나' 정도로 넘길 수 있는 발표지만 여기엔 한국 고대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 논리가 숨어 있다. 무슨 얘길까?

중국 정부 발표를 보면 장성은 동쪽으로 랴오닝성(遼寧省) 단둥시(丹東市) 북쪽 호산(虎山)부터 간쑤성(甘肅省) 가욕관(嘉�l關)까지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10개 성 156개 현을 지난다. 이 중 인공(人工) 장성은 6259.6㎞이고 나머지는 자연(自然) 장성이다.

중국 발표는 '명대(明代)의 만리장성'에 대한 조사였다. 우리는 장성을 기원전 3세기 말 진시황(秦始皇)이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장성은 명(1368~1644) 때 축조된 것이다.

중국이 2004년 압록강과 인접한 단둥시 북쪽 호산에 새로 만들어 놓은‘호산장성3. 고구려 박작성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발견된 곳이지만 중국은 한국어 간판까지 걸어 놓으며 마치 이곳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이번 발표는 기존의 상식과 다르다. 서쪽 끝은 가욕관으로 같지만 동쪽 끝이 압록강변까지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동쪽 끝을 허베이성(河北省) 친황다오시(秦皇島市)에 있는 산해관(山海關)으로 보았다.

'위략(魏略)'에는 진시황이 장군 몽염(蒙恬)을 시켜 장성을 쌓아 요동에 닿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장성이 압록강까지 이르렀다는 근거는 희박하다. 이후 명나라 때 여진족을 막기 위해 산해관 동쪽으로 요동변장(遼東邊牆·요동 변경에 세운 담)이라 불린 방어막을 쌓았다.

하지만 만리장성처럼 석성(石城)으로 쌓은 유적이 남아 있는 것은 없다. 명나라 이후 최근까지 그것을 장성의 일부라고 여긴 사람도 없었다. 중국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1982년의 탄지샹(譚其��) 책임편집 '중국역사지도집' 7권을 찾아보니 산해관 동쪽의 요동변장은 장성(長城)이 아니라 호원(壕垣·도랑과 담)으로 표시돼 있었다. 거기에 성이 없었다는 것을 중국 스스로 시인했던 것이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영역을 표시하는 상징적 의미가 강했다. 1990년대 이전까지 장성의 동쪽 끝은 '산해관'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산해관은 '관내(關內)'와 '관외(關外)'를 가르는 기준이었다. 한(漢)문화의 영향이 미쳤던 '원래 중국 땅'이 산해관 서쪽 '관내'였으며 '관외', 즉 만주는 중국 땅이 아니었던 곳으로 인식됐다.

그런데 압록강에 맞닿은 단둥 호산에는 베이징의 팔달령을 방불케 하는 웅장한 규모의 장성이 세워져 있다. 최근 중국이 장성 동쪽 기점이 이곳임을 알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곳은 정말 '만리장성의 동단(東端)'이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박작성(泊灼城)' 항목에서 '현재 단둥시 동북쪽의 호산산성에 비정(比定)된다'고 해 놓았다. '비정'이란 '옛 지명과 현재의 지명을 1대1로 연결해 추정한다'는 뜻이다. 고구려 산성인 박작성은 서기 648년 당태종(唐太宗)의 침략에도 함락되지 않았던 성이었다. 서길수 서경대 교수는 "1998년 이곳에 와 보니 깊이가 11m가 넘는 대형 우물이 있었는데 전형적인 고구려 양식이었다"며 "지금까지 압록강 하구 일대에서 발견된 유일한 고구려 산성이 바로 이곳"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원래 이곳에는 명나라 때의 봉화대가 있었지만 장성은 없었고 요동변장의 끝도 훨씬 북쪽인 봉성(鳳城·옛 고구려 오골성) 일대였다"고 했다. 중국측이 만리장성을 압록강까지 닿게 하기 위해 '가짜 유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2004년 이곳에 '호산장성'을 증축하고 '호산장성 역사박물관'을 새로 만들면서 고구려 박작성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유적들을 훼손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물관 안에는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는 설명을 붙였을 뿐 아니라 만리장성을 평양까지 이어 그린 지도도 전시했다.

왜 중국은 그런 일을 한 것일까? 노기식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1990년대 중국에서 국경 문제를 연구하는 변강학(邊疆學)이 대두하면서 동북쪽 변강학자들이 요동변장을 만리장성에 포함시켰다"며 "이제는 중국에서 요동변장과 만리장성이 별개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했다.

동북쪽 변강학자들은 동북공정의 주체였다. 호산장성 역사박물관이 문을 연 2004년 5월은 중국 당국이 지안(集安) 고구려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고구려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역사 왜곡에 힘쓰던 시기였다.

노 위원은 "요동변장의 만리장성 편입은 요동은 물론 만주까지 원래 중국의 영토였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명나라가 변장 너머 만주에 있던 여진족까지도 확고하게 통치를 했다는 것을 넘어서서, 조선 초기 북진 정책을 통해 확보한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의 땅까지도 '원래 명나라 땅이었다'는 논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이번 발표에 대해 "오래전에 논리개발이 끝난 '만리장성 동단 연장론'을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승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요동과 만주가 역사적으로 유구한 중국의 영토라는 강변은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통째로 가져가려는 동북공정의 논리라는 얘기다.

[[토일 섹션 Why?] 뉴스 궁금증이 싹~ 풀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