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비보호 좌회전

조선일보
  • 김홍진 논설위원
  • 김도원
    입력 2009.04.30 22:57 | 수정 2009.05.02 10:58

    1914년 미국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에 설치된 첫 전기신호등엔 빨간 정지신호 한개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고가 잦자 1918년 좌우로 가라는 녹색등과 직진하라는 황색등이 추가돼 3색등이 됐다. 그 후 색깔별 신호의 의미가 나라마다 다르던 게 1968년 유엔 빈협약에서 적색은 정지, 황색은 주의, 녹색은 직진과 좌우진행으로 통일됐다.

    ▶해방 후 들어온 미국식 3색 신호등이 4색등으로 바뀐 건 1980년대 초였다. 신군부가 녹색 신호에서 좌회전하면 사고위험이 크다며 좌회전용 녹색 화살표를 따로 만들었다. 마주 오는 직진 차가 없을 때 알아서 좌회전하는 '비보호 좌회전'이 몸에 밴 외국인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어떤 교차로엔 '직좌 후 직진' '직진 후 직좌' 표지판까지 붙어 내국인도 혼란스럽다.

    ▶4색 신호체계는 직진보다 좌회전을 우선시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신호주기가 선진국은 60~120초인데 우리는 180초 넘는 곳이 많다. 녹색신호에 좌회전도 하면 2개 신호로 4개 방향 차가 소통할 수 있지만 4개 신호를 일일이 주다 보니 대기시간이 길고 정체가 빚어진다. 운전자들은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고 과속, 신호위반, 교차로 꼬리물기를 한다.

    ▶정부가 2011년까지 모든 교차로에서 직진 우선 신호원칙을 세우겠다고 나섰다. 큰 교차로에선 '좌회전 후 직진'을 '직진 후 좌회전'으로 바꾸고 교통량이 적은 3차로 이하 교차로에선 비보호 좌회전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교차로 대기시간이 48초 줄고 통과 시속도 13㎞ 빨라진다는 것이다. 비보호 좌회전 차는 직진 차와 부딪칠 경우 100% 책임을 지게 돼 있다. '보호받지 못한다'는 이름이 그래서 붙어 있다.

    ▶미국 교차로에선 직진신호가 바뀐 뒤로도 좌회전 차가 두 대 더 지나가도록 다른 운전자들이 기다려주는 묵시적 규칙이 어김없이 지켜진다. 서둘러 좌회전하는 차의 사고를 줄이고, 직진 차가 많아 좌회전 기회가 없어도 두 대는 보내준다는 배려다. 그 이상 무리하게 꼬리물기를 했다가 교차로를 가로막으면 최고 500달러 벌금에 교육비 100달러까지 물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 우리 꼬리물기 범칙금은 6만원이다.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려 하고 정체된 교차로에 악착같이 머리를 들이미는 게 우리 운전문화다. 지금 같아선 비보호 좌회전이 제대로 될지 매우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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