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양안(兩岸) 모델과 독일 모델

조선일보
  • 지해범 전문기자
    입력 2009.04.26 23:34

    지해범 전문기자

    남북한 개성 접촉이 있기 3일 전인 지난 18일 중국 해남도(海南島) 보아오포럼에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와 첸푸(錢復) 대만 양안공동시장기금회 고문이 만났다. 이 자리에서 첸푸 고문은 '같은 배로 물을 건너고, 서로 도와 협력을 심화하여, 미래를 열어가자(同舟共濟, 相互扶持, 深化合作, 開創未來)'는 내용의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구두 친서를 전했다. 이에 원 총리도 "미래를 바라보며 과거의 나쁜 감정을 버리고, 밀접하게 협력하며, 손을 잡고 나아가자(面向未來, 捐棄前嫌, 密切合作, 携手竝進)"고 화답했다. 양측은 이어 25일에도 남경(南京)에서 제3차 양안(兩岸·중국과 대만)회담을 열고 추가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봄바람처럼 훈훈한 양안관계를 보다가 한반도로 눈을 돌리면 찬바람에 숨이 턱 막힌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개성공단을 닫았다 열었다 하며 남한을 가지고 놀아도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 미사일 발사에는 아예 속수무책이다. 4월 초 PSI(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에 당장에라도 참여할 듯하다가 곧 "칼은 칼집에 있을 때 위협적"이라며 꽁무니를 뺀다.

    이처럼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명박 정부에 일관된 대북전략이 있는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이쯤에서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대북 접근 모델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0여년간 정부가 채택한 '햇볕정책'은 '독일식 모델'을 모방한 것이다. 서독 정부는 고속도로 통행료나 정치범 석방 대가 등의 명목으로 한화 60조원을 동독에 지불하고, 통행·우편협정, TV 시청 등의 양보를 얻어냈다. 반면 햇볕정책은 북한에 거액을 퍼주고 '핵 위협 증대'와 '개성공단 인질화'를 돌려받았다. 물에 빠진 사람 보따리 건져주고 뺨 맞은 격이다.

    '독일 모델'과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이 '양안 협력 모델'이다. 한국처럼 전쟁을 치른 중국과 대만은 1949년부터 30년 이상 서로를 적대시했다. 첫 이산가족 상봉도 한국보다 4년 늦은 1989년 시작됐다. 하지만 양측은 '정부보다는 민간', '정치보다는 경제', '전체보다는 부분부터'라는 교류원칙을 정했다. 통상(通商·직교역)·통항(通航·인적교류)·통우(通郵·우편교류) 등 이른바 소3통부터 추진한 것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현재 상해(上海) 심천(深�q) 광주(廣州) 등지에는 대만 기업인과 유학생 100만여명이 살고 있다. 매일 5000명 이상의 중국인이 대만을 방문한다. 총 1500억달러의 대만 돈이 중국에 들어가 중국 경제를 일으키자 요즘은 거꾸로 중국 기업들이 대만 투자를 모색 중이다.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민간·경제 교류를 바탕으로 3~4년 전부터 양측은 정치·군사 교류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해 보아오포럼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과 샤오완창(蕭萬長) 대만 부총통이 만난 것도 이런 바탕에서 가능했다. 올 8월 양쪽 군인들은 하와이에서 만난다. 중국인들은 '통일'이란 말을 입에 잘 올리지 않지만 '사실상의 통일'을 만들어 가고 있다. 주목할 점은 대만을 자기네 '우산' 아래 두었다고 믿었던 미국이 양안 간의 접근에 거의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양안관계와 남북관계는 다른 점이 많다. 하지만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으로 금방이라도 뭘 이룰 것처럼 요란을 떨었던 한국 정부는 '소걸음'처럼 느리지만 '원칙'을 지켜 '실질적인 통일'로 성큼 다가서는 중국·대만관계에서 분명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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