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신라 김씨와 흉노 왕자

조선일보
  • 김태익 논설위원
  • 김도원
    입력 2009.04.24 03:09

    신라의 화려한 금관은 세계에 내놓을 만한 자랑거리지만 아직도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많다. 그중 하나는 금관이 왜 박(朴) 석(昔) 김(金) 세 왕족 중 유독 김씨 계열 왕릉에서 많이 출토되는가 하는 점이다. 또 거기서 각배(뿔잔), 유리제품, 말 안장 등 중앙아시아 기마민족이 쓰던 물건들이 대량 출토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신라 김씨의 시조는 김알지(金閼智)로 알려져 있다. 금관과 기마민족 유물들은 김알지의 출신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현재 한국에 있는 270여개 성씨(姓氏) 중 김씨는 4800만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김씨는 다시 120여개 본관으로 나뉘지만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부분 신라 김알지계와 가야 김수로왕계에서 분파한 것들이다. 김알지가 어디서 왔느냐는 것은 한국 성씨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김씨들의 뿌리를 밝히는 것과 관련된 문제다.

    중국 사서(史書)에는 김알지가 경주 계림의 금궤에서 태어났다는 해보다 200년 앞서 한(漢)나라에 김씨 성을 가진 제후가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지금의 간쑤성 일대를 지배하던 흉노족 왕 휴도의 왕자로 태어났으나 한무제(漢武帝)에게 나라가 망한 뒤 그의 말치기가 됐던 김일제(BC 134~BC 86)다. 무제는 김일제의 비범함을 발견하고 그를 고속 승진시켜 투후(투 지방을 다스리는 제후)에 임명하고 김(金)이라는 성을 하사했다. 김일제는 세계 최초의 김씨였던 셈이다.

    ▶국내 학계 일각에서는 이 김일제의 후손이 한나라에서 승승장구하다 나중에 왕망의 반한(反漢) 세력에 가담, 멸문지경을 당하자 한반도로 피신해 신라의 지배세력이 됐다는 가설을 펴왔다. 김일제의 7대손 김성한이 신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이며 김일제의 동생 김윤의 5대손 김탕이 가야 김수로왕이 됐다는 것이다. 신라 30대 문무왕 비문(碑文)의 왕실 계보에 '투후'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김일제와 신라 김씨 왕실의 혈연관계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당나라 때 시안(西安)에서 죽은 신라 귀족 여인의 비문에 "(신라) 김씨의 조상이 김일제"라고 쓰여 있는 것을 부산외대 권덕영 교수가 중국 현지에서 찾아내 엊그제 공개했다. 김일제와 김알지의 관계는 더 밝혀야 할 숙제가 많겠지만 적어도 9세기 무렵 신라 지배층이 자기들 시조를 흉노의 왕자로 믿고 있었던 것은 분명해졌다. 먼 옛날 중앙아시아 초원을 질주했던 유목의 기억이 천 년 넘게 잊혔다가 되살아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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