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 비전을 말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철 총장 "신입생 상위 20%, 해외대학서 한학기 배워"

입력 2009.04.23 03:19

외국어에 능통해야 세계화 시대에 생존
올해도 대입논술에 영어지문 사용할 것

한국외대는 올해 개교 55주년을 맞아 대내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이루고 있다. 일본어과가 일본어대학으로, 중국어과가 중국어대학으로 승격됐다. 일본어와 중국어가 단과대 차원으로 승격한 것은 국내 처음이다. 외형적으로는 지난 1957년에 세워진 옛 본관을 철거하고, 일부만 역사관으로 남겼다. 오래된 건물에 가려져 있던 웅장한 새 본관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면서 캠퍼스가 확 달라져 보인다.

대학의 변화를 이끄는 박철(59·사진) 총장은 "저마다 글로벌화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글로벌화의 토대가 되는 외국어 교육에 대해서는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다"며 "한국외대는 국가의 지원 없이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사립대지만 국제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 육성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고 역설했다.

최소 2개 이상 외국어 할 수 있어야

세계화 시대에 국가와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박 총장은 "두말할 것 없이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흔히 외국어라고 하면 영어라고만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다양한 국가와 인종을 상대로 교류해야 하는데 영어만 가지곤 부족한 거죠. 영어 이외의 외국어를 안다는 말은 국제무대에서 무기를 2개 가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무기가 두 개인 사람이 하나뿐인 사람보다 유리할 수밖에 없죠."

외국어 교육은 어릴수록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박 총장은 "3~9세 사이에 2~3개의 언어를 동시에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공인된 사실"이라며 "어릴 때부터 2개의 언어를 기본적으로 배우는 것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한국외대의 경쟁력

외국어 실력을 높이기 위한 한국외대의 교육시스템은 독특하다. 대표적인 제도가 '7+1 제도'와 '2개 외국어 졸업 인증제'다.

박 총장은 "2006년부터 도입된 '7+1 제도'는 학생들에게 4년간 8학기 재학 중 1학기를 외국 대학에서 수학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벌써 1000여명의 학생이 혜택을 받았고, 올해 신입생은 상위 20% 학생 전원이 해외대학에 파견된다"고 설명했다. 또 "외대생이라면 전공에 상관없이 적어도 2개 이상의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며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이수하고, 졸업 논문 또는 졸업 종합시험에서 합격하더라도 2개 이상의 외국어 인증기준을 반드시 통과해야 졸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외에 한국외대는 올해부터 '4×30%'를 도입했다. 외국인 교수, 원어 강의, 해외 파견학생, 외국인 학생비율 등 4가지를 3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의미다.

"한국외대는 '이중전공제'를 도입했습니다. 입학 당시의 전공 이외에 또 다른 하나의 전공을 더 이수하게 하는 제도죠. 2007학년도 입학생부터 의무사항입니다. 탄탄한 외국어 실력은 기본이고, 심화한 전문지식을 갖춘 글로벌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외대를 만나면 세계가 보인다'라는 대학슬로건이 현실화되는 것이죠."


영어시험 논란

한국외대는 지난 대입에서 영어 제시문을 논술에 활용,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한 박 총장의 입장은 명확했다.

그는 "외대가 외국어에 실력있는 인재를 뽑기 위해서 영어 제시문을 쓰는 것을 잘못됐다고 하는 것이 잘못된 것 아니냐"며 "올해 입시에서도 영어 제시문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대 논술문제가 다른 대학의 논술문제와 같을 순 없어요. 진정한 외국어 특기자를 뽑기 위해서는 영어 쓰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일부 전형은 고교 수준의 영어 제시문을 내서 영어로 답을 쓸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어 쓰기 문제를 낼지 여부는 현재 대교협 및 교과부와 협의 중입니다."


외국어 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돼야

박 총장은 "국내에서 대학입시 경쟁이 과열돼 소위 'SKY'에 가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 것처럼 부추기는 사회풍토 때문에 외국어 교육이 입시교육으로 변질했다"며 "각 대학의 다양한 특성화를 인정하고 세계화를 위한 기본 토대로써 외국어 교육이 중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명문 외국어대는 모두 국립대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동경외대, 중국의 북경외대, 러시아의 무기모(MUGIMO), 프랑스의 이날코(Inalco) 등 외대는 모두 국립대로 각국 정부로부터 엄청난 행·재정적 지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한국외대는 사립이라서 학생들의 등록금 위주로 운영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외대의 위상이 낮은 게 아닙니다. 한국외대에서 가르치는 언어 수는 프랑스 이날코 93개, 러시아 무기모 53개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45개입니다. 일본 동경외대 26개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죠. 힘든 여건 속에 고군분투 중인 한국외대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박 총장은 "외국어대라서 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얼마 전 아르메니아 대학 총장이 방문했는데 그 대학 학생들은 5개 국어를 구사한다고 말하더군요. 이유를 물으니 'to survive(생존하기 위해서)'라고 대답을 합디다. 이 말이 정답입니다. 만약 홍콩이 중국어를 쓰고,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어를 고집했다면 아시아 허브가 될 수 없었겠죠. 우리도 국민소득 3만불 국가가 되려면 4~5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글로벌은 곧 외국어'라는 정말 간단한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 박철 총장은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동고와 한국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한 뒤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로망스어학부 초빙교수, 한국스페인언어문학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아시아·태평양 외국어대학 총장협의회장, 한·스페인 우호협회장 등을 맡고 있다. 부분 번역에 그쳤던 소설 돈키호테를 2004년 국내 처음으로 완역해 화제를 모았다. 2006년 2월 외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2006년 215일간의 노조 파업을 '무노동 무임금' 원칙으로 해결해 한국협상학회로부터 '2008년 협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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