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고대서 퇴짜맞고 명지대 테니스부로 입학…굴곡의 축구 인생 조명

입력 2009.04.20 14:16 | 수정 2009.04.21 08:20

한국축구대표팀의 주장인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19일 오후 방영된 MBC스페셜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 편을 통해 어려웠던 학창시절부터 세계 최고의 클럽인 맨유의 주축선수로 활약하기까지 굴곡의 축구인생을 털어놨다.

박지성은 지난 2005년 맨유 입단 당시 소감에 대해 “TV에서 보던 선수들을 만나던 기분이었다”며 “나도 선수로 왔는데 왠지 구경꾼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에 대해 “가장 큰 장점은 공을 소유하고 있지 않을 때 움직임이 좋고 위치선정이 좋다”며 “결코 뛰는 것을 멈추지 않는데 공간이해력이 좋아 우리팀이 공을 가졌을 때 항상 패스를 받을 위치에 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지성은 “나는 축구는 잘하고 싶은데 평범하고 싶었다”며 “참 아이러니하게도 공존할 수 없는 두 개를 가지고 있는데 축구를 잘하게 되면 유명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축구를 잘하고는 싶은데 유명해지기는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지성. /MBC 제공

박지성은 방송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며 대학교 입학까지 힘들었던 학창시절도 털어놨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키가 162cm에 불과하고 체격도 왜소해 축구를 포기할 유혹에 빠졌던 박지성. 축구에 인생을 건 외아들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정육점을 차렸던 박지성의 아버지는 개구리와 녹용, 사슴피 등 몸에 좋다는 것은 모두 박지성에게 먹였다고 한다.

박지성은 “지금은 당시 뭘 먹었는지 알지만 당시에는 아버지가 사실대로 얘기해 주지는 않았다”며 “한번은 약을 먹고 토한 적도 있었지만 당시 축구를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 커 약을 모두 먹었다”고 했다.

수원공고 시절 키가 170cm를 넘었지만 박지성은 대학입학 조차 못하는 상황이 됐다.

박지성은 “중학교 때부터 정말 고려대 입학이 목표였는데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원하던 대학 입학 취소통보를 받았고, 연고팀인 프로축구 수원팀에서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

박지성은 “난 내 스스로가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럴 능력이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충격이 상당히 컸다”고 말했다.

축구인생의 위기를 맞았던 박지성의 구원한 것은 김희태 당시 명지대 감독이었다. 박지성을 눈여겨 본 김 감독은 “박지성이 아주 게임을 영리하게 했고, 전술적인 감각이 굉장히 좋았다”며 “두번째 게임을 자세히 보니까 남한테는 보이지 않지만 엄청나게 많이 뛰었다”고 말했다.

그해 7월 이미 축구부 신입생 선발이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김 감독은 학교 테니스부 감독을 찾아가 남는 한 명의 정원으로 박지성을 뽑아달라고 했다. 결국 박지성은 당시 축구부가 아닌 테니스부로 명지대에 입학한 셈이다.

박지성은 명지대 시절 올림픽 대표팀과 친선경기에서 70여m를 질주하며 올림픽 대표 5명을 제치고 골키퍼까지 제쳐 골을 넣었다. 이것이 바로 당시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었던 허정무 현 국가대표팀 감독과의 인연이다.

결국 허 감독은 박지성을 올림픽 대표에 발탁했다. 그러나 일선지도자와 언론에서는 뒷말이 많았다고 한다. 김희태 감독은 “허 감독이 나와 바둑을 많이 두는데 박지성에게 ‘바둑으로 잉태된 선수’라고 하기도 했다”며 “(실력도 없는) 가짜 선수를 허 감독이 선배 때문에 받았다는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지성은 억울한 마음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었다”며 “지금 내 옆에는 그 나이대에 최고의 선수들이 있어 다른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섭섭한 점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이어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현 첼시 겸 러시아 대표팀 감독을 만나면서 박지성은 한국축구의 대표 스타로 부상한다.

그러나 박지성은 당시를 떠올리며 “히딩크 체제가 출범한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대표팀 명단에 빠진적이 없었지만 월드컵 3개월전 까지만 해도 대표팀에서 빠져야 될 선수 1순위였다”면서 “히딩크 감독이 아닌 다른 감독이었다면 아마 월드컵에서 뛰지 못했을 것이다. 히딩크 감독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명지대 2학년인 2000년 일본 2부리그 교토퍼플상가에 입단해 2003년 1월 1일 열린 천황배 결승에서 팀에 우승컵을 안긴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 PSV에인트 호벤으로 팀을 옮긴다. 당시 박지성의 활약에 감명을 받은 교토퍼플상가 구단주는 박지성에게 “선수생활의 끝은 우리 팀에서 마쳤으면 좋겠다. 절름발이가 돼 오더라도 받겠다”고 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박지성은 그러나 에인트호벤 이적 이후 무릎 부상 상태로 경기에 나서면서 부진을 면치 못해 홈팬들에게 야유를 받는 수모를 겪었다. 박지성은 당시를 축구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로 꼽았다.

박지성은 “공을 받으면 무조건 야유가 나왔다. 3만5000명 관객이 저한테 보내는 아유가 상대방에게 보내는 것 보다 훨씬 강하게 느껴졌다. 당시 경기장에서 공이 오는 게 무서웠을 정도다. 축구를 시작해 하기 싫다고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박지성은 적응을 위한 피나는 노력을 했고 UEFA컵 페루자와 원정경기 이후 자신감을 되찾아 슬럼프 탈출에 성공했다.

팬들의 아유는 감탄으로 변했고, 박지성을 응원하는 ‘위송빠르크’라는 응원가까지 울려 퍼졌다. 2004~2005년 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전 당시의 맹활약은 PSV 아인트호벤 시절의 절정기였다.

당시 AC밀란전에는 맨유의 퍼거슨 감독이 관중석에 앉아 박지성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퍼거슨 감독은 “당시 네덜란드 스카우터가 박지성을 예의주시하라고 했다”며 “박지성의 열정과 골을 몰고 가는데 있어 공간이해력이 너무 훌륭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영입의사를 타진했고, 박지성은 2005년 7월 세계 최고의 클럽 맨유에 입단한다.

박지성은 “이 클럽은 세계 최고의 클럽이기 때문에 제 한계에 도전하는 마지막 관문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실패하면 내 한계가 여기까지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이 팀에 들어가서 과연 어디가 나의 끝인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방송에서는 박지성의 생일날 절친한 팀 동료인 파트리스 에브라와 카를로스 테베즈가 케이크을 들고 박지성을 찾아와 생일축하를 하는 장면도 소개됐다.

에브라는 “박지성은 유령이다. 움직임과 변화가 놀랍다”고 했고, 테베즈는 “박지성 덕분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웨인 루니 같은 선수들이 상대선수를 신경쓰지 않고 플레이를 한다.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했다.

박지성은 한국말로 굿바이를 어떻게 말하냐는 에브라의 질문에 “나는 바보입니다”라고 짓굿은 농담으로 답하기도 했다.

한편 맨유는  20일(한국시간) 새벽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8~2009 잉글랜드 FA컵 준결승전에서 에버튼과 연장접전 끝에 득점 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2대 4로 패해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아스널을 꺾고 이미 결승에 진출한 첼시의 히딩크 감독과 박지성의 맞대결은 무산됐다.

박지성은 이날 선발 출전했으나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후반 21분 폴 스콜스와 교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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