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고문 특별기고] 손도끼와 골프퍼터와 전기총(銃)

  • 김대중 고문
    입력 2009.04.20 13:36 | 수정 2009.04.21 09:56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52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대중 고문

    자신의 승용차에 손도끼를 싣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대형차나 버스들의 횡포에 여러 번 시달린 경험을 하고 난 뒤 그런 일을 또 당할 때 쓰려고 그런다는 것이다. 실제로 버스가 자기 차를 밀어붙여 중앙선을 넘게 하거나 다른 차와 추돌하게 만든 경우가 있어 시비 끝에 도끼로 버스의 백미러를 박살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아주 유용했다”고 말했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자기 차에 골프퍼터를 싣고 다닌다. 그분도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어린 학생들을 타이르다가 큰 봉변을 당한 적이 있어 다시는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고 퍼터를 갖고 다닌다고 했다.

    나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 있다. 주택가 네거리에서 우회전하려고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대여섯 명의 여중학생들이 건널목의 초록신호가 빨간신호로 바뀌었는데도 자기들끼리 떠들고 장난치며 건너기에 “학생들 좀 빨리 가지”라고 한마디했다. 그랬더니 그중 한 명이 할아버지뻘인 내게 다가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며 가운뎃손가락을 세우는 것이 아닌가. 내 친구는 길을 걷다가 20대 초반 청년 두 명과 어깨를 부딪쳐 뒤돌아보았다가 큰 낭패를 겪기도 했다. 그 청년들이 다시 되돌아와 “뭘 쳐다봐?”라고 반말조로 지껄이며 주먹으로 자신의 배를 세게 치더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들은 단순히 무례하거나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넘어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갖게 하고 실제로 위해를 가하는 준(準)범죄적 양태들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 또는 치안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말하자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연장자에 대한 예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규범의 문제라기보다 일종의 형사적 범법(犯法)의 차원에서 다룰 문제라는 얘기다.

    다들 창피하고 거북해서 말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실생활에서 이런 일을 한두 번 안 당한 사람이 없으리라는 것은 우리 주변의 경험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그중에서는 좋은 뜻에서 충고를 해주거나 어른 된 도리에서 타이르다가 젊은 사람들로부터 손찌검을 당해 분하고 서럽기까지 하다는 사람도 있다. 어쩌다 세상이 이 모양이 됐느냐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한국을 살기 괜찮은 곳으로 꼽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치안상태를 든다. ‘밤거리 범죄’가 비교적 적다는 것이다. 하긴 밤에 거리를 혼자서 걸어 다니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도시에서 살다 온 사람들에게 서울은 그래도 안전한 곳일는지 모른다. 그들이 말하는 치안은 살인, 강도, 강간 약탈 등의 무시무시한 범죄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 특히 연장자, 노약자, 여성들이 말하는 것은 범죄와 관련된 ‘치안’이 아니라 ‘수모’이며 ‘봉변’이다. 손찌검이고 욕설이다.

    우리가 이것을 심각히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장유유서 등 유교적 또는 고전적(?) 전통 속에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구에서는 옛날에는 칼을 차고 다녔고 근세에 와서는 총을 차고 다녔다. 일본에서도 칼을 차고 다녔다. 그들은 길을 걷다가 어깨를 부딪치거나 희롱을 당하거나 하면 가차없이 결투를 하고 칼을 휘둘렀으며 즉석에서 총으로 대결했다. 그러니 서로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었다. 상대를 잘못 거슬리게 하면 그 자리에서 죽거나 다쳤다. 말하자면 살기 위해 ‘강요된 배려’였다. 그러나 우리는 ‘즉석 해결’의 사회가 아니었다. 우리 민족은 비록 무사라 해도 비상시가 아니면 칼을 차고 다니지 않았다. 개인 간에는 오로지 도덕심이나 예의 같은 것이 관계를 지탱하고 충돌을 막았다.

    그러나 어른을 공경하고 (케케묵은 소리처럼 들리지만) 상대방을 배려하며 노약자를 돕는다는 유교적·도덕적 강제의 장치가 풀어진 상태에서는 완력이 지배하기 마련이다. 즉 힘 센 사람이 제일이라는 것이다. 길거리나 골목에서 상대적으로 완력이 세거나 수적으로 우세한 자들이 노약자를 협박하고 희롱하고 모욕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것은 이제껏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어떤 도덕적 강제력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예의니 질서니 규범이니 하는 것들을 거론하는 것조차 쑥스럽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우리는 비참하리만치 비겁하고 상스럽고 악에 받치고 약 올리는 대화들을 목격한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당하는 봉변과 모욕과 폭력은 여기에 비하면 유치하리만치 급(級)이 낮다. 거리의 무뢰한이나 깡패는 보이기나 하고, 정 죽기살기로 나서면 한 번 붙어볼 수도 있다. 누구처럼 도끼나 골프퍼터로라도 어떻게 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의 저질들은 보이지도 않고 총이 있어도 쓸 수가 없다. 잡으려 해도 쉽게 잡히지 않는다. 한마디로 더럽고 비겁하다.

    언필칭 법(法)이 있다고 한다. 법? 요즘 법을 믿는 사람은 바보 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불법적 폭력이 난무하고 국회의원들이 사람을 모욕하고 희롱하는 판에 법만 믿고 있다가는 복장 터지기 알맞다. 1인 시위가 합법임을 기화로 인간으로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보란 듯 써 붙이고 다녀도 경찰은 손댈 수가 없다고 한다.

    도끼를 휘두르고 골프퍼터를 내려치면 경찰에 끌려가는 사람은 그 사람이다. 조상 3대에 걸쳐 상소리로 막가는 욕을 해도 잡혀가는 사람은 욕을 견디다 못해 주먹을 날린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욕은 아무리 거칠어도 폭력이 아니고 주먹은 아무리 가벼워도 폭력이란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는 길은 각자 스스로 자기를 지키는 길뿐이다. 또다시 젊은 애들한테 봉변을 당하기 전에 나도 방어용으로 진짜 총처럼 생긴 전기총 하나 장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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