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부터 옛 소련 핵과학자 32명 북한에 귀화"

  • 조선닷컴

    입력 : 2009.04.19 20:22 | 수정 : 2009.04.19 20:24

    “1991년부터 옛 소련 핵과학자 32명이 북한에 귀화했습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35호실’ 이라는 북한 내 대남(對南) 최고 공작부서에서 고위급 공작원으로 활동하다 1999년 일본으로 탈출. 지난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박건길(남·68)씨가 입을 열었다. 그는 월간조선 5월호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북한에서의 활동상을 처음으로 자세히 털어놨다.

    박씨에 따르면 소련 과학자들은 1991년부터 북한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1993년에는 총 32명이 북한으로 귀화했는데 가족과 함께 이주했으며 그들에겐 매달 3000달러씩의 월급이 주어졌다고 한다. 소련에서 500달러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던 과학자들을 핵 개발 목적으로 유치해온 것이었다.

    이들 과학자들은 평양 유경호텔 뒤편 고급 맨션에 모여 살았다고 한다. 소련·파키스탄·이란 과학자들이 함께 거주했다. 파키스탄은 원자력 관련 기술을, 소련 과학자들은 원자폭탄 제조기술을 전수해줬다.
    박씨는 어떤 인물이길래 이런 고급 정보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재일 조선인 출신이었던 박건길씨는 북송(北送)교포로 북한에 들어가 30년 간 무선통신 과학자로 활동하다 대남공작원이 됐다. 1941년 일본 나가노 현에서 태어나 1960년 8월 북한에 들어가 김책종합대학에 입학, 무선공학을 전공했다. 이 후 무선통신 관련 분야에서 여러 기술들을 개발하고 무역회사에서 외화를 많이 벌어들이며 북한 지도부의 인정을 받아 해외 공작원으로 임명됐다.

    박씨는 ‘돌벼락’이라는 신무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돌벼락’은 폭약을 넣은 돌무덤으로 적이 접근하면 원격장치로 폭파시키는 비밀 군사무기이다. 1986년부터 1993년까지 공동묘지로 보이는 곳 120곳에 설치됐다. 그는 이 무기 개발로 김일성으로부터 당시 북한 내 2500명 정도 되는 ‘숨은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는 1996년 4월부터 중국 베이징에 파견돼 해외정보 수집과 외화벌이 업무를 수행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남측 안기부 사람들을 만나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정보 제공의 이유는 돈이 아닌 “인권과 자유가 없는 북한이 빨리 붕괴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35호실 명칭과 주요 인물들의 신상, 35호실의 베이징 거점망, 북한 미사일 기지 현황 등 당시 안기부가 파악하지 못한 정보들을 제공했다. 그는 “대포동 미사일의 경우 100% 일본제 부품을 사용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베이징에서 활동하며 미화 28만 달러를 보유하고 있었다. 주로 골동품과 금 장사를 해서 번 돈이다. 김정일의 ‘대남공작원들도 외화벌이를 하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다. 가짜 골동품을 만들어 팔기도 했지만 북한 내 몇 백 년 된 국가 보물들을 팔아 넘기기도 했다. 당시 삼성그룹 직원들과 주로 거래가 이루어 졌다.

    그는 “당시 삼성 이병철 회장이 북한 국보급 골동품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거액을 들여서라도 북한산 골동품을 사들였다”면서 “그런 면에서 이병철 회장은 애국자”라고 말했다. 그는 베이징에서 활동할 당시 북한산 위조 달러를 사용했다고도 밝혔다. 위조 달러는 1974년부터 사용됐고 북한 작전부 주도로 ‘체신부 우표인쇄소’ 같은 곳에서 만들어 졌다고 말한다.

    박씨의 베이징 내 정보활동은 1997년 8월 북조선에서 ‘조사부 사건’이 일어나면서 위태로워졌다. 이 사건은 35호실 요원 두 명이 골동품 장사 차액을 가지고 다투던 것을 누군가 엿듣고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 밀고하면서 시작됐다. 이는 김정일 체제 이후 대남공작원들이 개인 돈벌이에 집중하면서 파생된 일이었다. 당시 35호실 평양의 권희경 부장이 숙청되고 베이징의 대남공작원들이 행방불명되기 시작했다.

    그는 신변에 위험을 느껴 1998년 8월 아들 박상학씨에게 연락해 가족들을 모두 탈출시키고 본인은 베이징 한국대사관을 찾았다. 그러나 석 달 동안 퇴짜를 맞고 결국 일본대사관을 통해 탈출했다. 그는 이 후 총 30여 차례에 걸쳐 일본에 북한 관련 비밀 정보를 제공했다. 그는 2002년 <북한이라는 악마>와 <북한 악마의 정체>라는 두 권의 책을 출간하고 2003년에는 재일탈북자 50여 명과 함께 ‘일본 탈북 동지회’를 결성해 대표를 맡기도 했다.

    박씨는 “김정일이 죽어도 그 세력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5~6년간은 체제가 유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설령 북한 정권이 무너져도 남북 주민은 사고방식이 너무 달라 통치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탈북자를 훈련 시켜 북한 지역에 다시 보내야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월간조선 5월호와의 인터뷰 말미에서 지난 10년 간 일본에서 바라본 남한의 대북 정책에 대한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같은 국정원이라도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어요. 이명박 정부는 그 동안 잘못됐던 국정원의 역할을 바로잡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세한 기사는 월간조선 5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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