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키로 한 것은 그만큼 혐의 입증을 자신한다는 얘기다.
지난주부터 쉴새 없이 몰아치던 검찰 수사가 노 전 대통령 소환을 앞두고 속도를 떨어뜨리는 듯한 양상을 보였지만, 실제로는 노 전 대통령이 빠져나갈 수 없는 포위벽을 구축 중이라고 검찰은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 노 전 대통령 일가(一家)가 박연차 회장 등에게 받은 뭉칫돈의 행방도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부탁에 따라 2008년 2월 박 회장이 건넸다고 진술한 500만달러 중 300만달러가 노 전 대통령 아들 건호(36)씨와 처남(건호씨 외삼촌) 권기문씨가 대주주인 회사에 흘러들어간 것을 확인했다.
수사과정에서 정대근 전 농협 회장(구속)이 권양숙 여사에게 3만달러를 건넨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때문에 부인과 아들, 처남에 조카사위까지 눈먼 돈을 받아 돈 잔치를 벌인 상황에서, "어떻게 노 전 대통령만 이를 새까맣게 모를 수 있었느냐"는 의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검찰 "벽돌 쌓는 중"
대검 중수부 관계자는 16일 "우리는 지금 벽돌을 하나씩 쌓아 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의 진술을 입증할 정황증거들을 차곡차곡 축적해서 노 전 대통령과의 일전(一戰)은 물론, 법원의 구속여부 판단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돈 사용처 조사와 함께 뇌물죄 구성에 필요한 대가 관계 부분 정황증거들도 집중적으로 보강하고 있다.
특히 경남은행 인수와 관련해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이 박 회장 측과 여러 차례 의논한 단서를 확보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정씨가 '총무비서관으로서 한 일'이 없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정씨 스스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기보다는,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그 뜻을 전달하는 '청와대 집사'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만 몰랐다?
노 전 대통령 가족들은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에 수십억원 이상의 뭉칫돈을 받아썼다.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의 회갑 축하금으로 정대근 전 회장에게 2006년 3만달러를 받았고, 같은 해 8월엔 박 회장에게 3억원을 얻어 썼다.
또 이듬해인 2007년 6월 말엔 노 전 대통령이 퇴근해 있던 청와대 관저로 박 회장에게서 100만달러 돈가방이 배달됐다. 퇴임을 즈음해 전달된 500만달러는 아들과 조카사위, 처남이 나눠 썼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한결같이 "나는 몰랐다"고 하고 있다.
가족들이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에 걸쳐서 뭉칫돈들을 받고, 또 썼는데도 가장(家長)은 몰랐다는 것이다.
검찰은 그러나, 이는 자신에 대한 사법처리로 연결되는 고리를 차단하려는 노 전 대통령의 핑계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특히 노 전 대통령과 측근들이 연철호(36)씨가 박 회장 돈 500만달러를 받은 사실을 "퇴임 후인 지난해 3월 알았다"고 한 부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다.
500만달러 중 노 전 대통령 아들 건호씨가 대주주인 '엘리쉬&파트너스'사에 들어간 300만달러와, 여기서 권기문씨 회사로 재투자된 25만달러는 지난해 3월 이후에 송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건호씨가 돈 받은 것을 몰랐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3월에 알았다'고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측은 건호씨의 지분 보유사실이 언론에 공개되고 나서야, "지분이 있었는데 정리했다"고 했지만, 지분 보유사실을 언제 알았는지는 밝히지 않기도 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이미 2007년 12월부터 '500만 달러 문제'에 개입했다는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로 미뤄볼 때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에야 건호씨가 대주주로 있던 회사에 돈이 들어간 것도 나중에 문제될 소지를 차단하기 위한 계산 때문이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