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싱가포르 쇼크'

조선일보
  • 이준 논설위원
  • 김도원
    입력 2009.04.16 23:30

    1967년 미국을 처음 공식 방문한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가 미국 기업인들이 시카고에 마련한 오찬 간담회에 갔다. 한 참석자가 작은 어촌 싱가포르가 200만 거대도시로 성장한 비결을 물었다. 리콴유의 대답은 명쾌했다. "어느 나라보다 싸고 좋은 물건을 만들어라. 그러지 않으면 싱가포르는 죽는다." 미국 재계에 "싱가포르를 주목하라"는 입소문이 퍼져 나갔다.

    ▶리콴유가 총리에 취임한 1959년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은 400달러였다. 자원 하나 없는 척박한 땅이라 마실 수돗물조차 이웃 나라에서 사와야 했다. 그나마 식민종주국 영국의 원조·교역에 80%를 의존하던 싱가포르 경제는 1960년대 중반 영국군이 철수하면서 공황으로 빠져들었다. 이웃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와의 교역도 격감했다. 싱가포르가 붙든 구명줄은 '개방'과 '수출'이었다.

    ▶싱가포르는 20년 만에 동남아 최고 무역허브로 성장했다. 세계 다국적 기업과 손잡은 수출 산업화전략이 들어맞았다. 다국적 기업들이 동남아에 수출하는 화물 보따리를 싣고 와 풀어놓은 뒤 동남아 생산기지에서 만든 상품을 끌어모아 세계로 재수출하는 연결고리가 됐다. 싱가포르는 GDP 두 배가 되는 상품을 파는 수출대국이다. 5000여 외국기업과 220여 다국적기업의 아태지역본부가 서울 면적보다 조금 큰 싱가포르에 들어와 있다.

    ▶싱가포르의 올 1분기 성장률이 작년 1분기 대비 -11.5%까지 곤두박질쳤다. 수출도 올 들어서만 20~30% 줄었다. 매일 63개 항공사가 세계 139개 도시를 연결하는 창이공항과 123개국 600개 항구로 화물을 실어나르던 싱가포르항도 한산해졌다. 올해 성장률이 -6~-8%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싱가포르는 1997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외환위기도 별 탈 없이 넘겼다. 당시 리콴유는 "싱가포르는 아시아적 가치, 아시아적 생산모델의 선두주자"라며 IMF를 향해 "아시아적 모델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큰소리쳤다. 그도 이번엔 별로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에서 가장 개방된 경제체제를 지닌 싱가포르가 수출이 빠르게 줄면서 경제 전체가 주저앉고 있다"고 했다. 내수 기반 없이 수출에만 의존하는 성장모델의 위험성,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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