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쌀밥 먹는 '죄(罪)의식'

조선일보
  • 최병묵 논설위원
  • 김도원
    입력 2009.04.14 23:06

    "우리 수령님께서 그토록 소원하시던 이밥(쌀밥)에 고깃국 먹는 세상이 장군님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 지난 1월 2일 북한 양강도 혜산시 노동당 간부 강연회에서 당 선전비서가 한 말이다. '이밥에 고깃국'은 1950년대 천리마운동이 한창일 때 김일성이 '살기 좋은 사회주의 세상'의 상징으로 내걸었던 말이다. 그 낡은 구호를 50년 지난 지금도 당 간부가 버젓이 들먹이는 게 북한 실정이다. 국가인권위 조사에서 '굶어 죽는 것을 직접 봤다'는 탈북자가 58%나 된다.

    ▶2007년 한반도평화연구원 조사를 보면 7년 이상 한국에 사는 탈북자의 월평균 소득은 2001년 50만원에서 2004년 95만원, 2007년 140만원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그래도 2007년 한국인 월평균 근로소득 211만원의 66% 수준이다. 중간층 소득의 절반도 못 버는 비율, 빈곤율도 27.4%로 한국인 평균치 18.4%보다 높다.

    ▶그럼에도 탈북자들이 느끼는 삶의 질은 나쁘지 않다. 2007년 조사에서 신체·정신·사회·환경 영역으로 나눠 스스로 삶의 점수를 매기게 했더니 5점 만점에 3.43점이 나왔다. 2000년 한국 사람들 만족도 3.27점을 웃돈다. 2003년 서울에 온 한 탈북자는 수기에 "먹는 문제로 고민하는 일은 없는 나라 중국이 낙원인 줄 알았더니 한국은 천당이었다"고 썼다. 그는 중국에 접한 혜산에 살아 웬만큼 바깥 물정을 알 텐데도 한국의 의식주 수준을 경이로워했다.

    ▶탈북자들이 북한의 가족 생각이 가장 진하게 나는 때가 음식 먹을 때라고 한다. 1994년 국군 포로 조창호 소위가 북한을 탈출해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돼 양식당에 갔다. 그는 옥수수 버터구이가 나오자 당장 "치우라"고 했다. 두고 온 두 아들에 대한 죄의식 때문이다. 형제는 아버지가 1977년 진폐증으로 광산 일을 더 못하자 뒷산에 몰래 옥수수 화전을 일궈 부양했다. 그는 하루 세끼, 십몇년을 꼬박 옥수수로 연명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엊그제 탈북자들의 뒤숭숭한 심정을 1면 기사로 다루면서 "탈북자들 소원은 헤어진 가족과 뜨거운 쌀밥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 탈북 청소년들에게 생일잔치를 해주면 예외 없이 북한 가족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는 얘기도 전했다. 탈북자들은 특히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죄의식에 시달린다고 한다. 인민 먹여 살릴 궁리는 않고 핵과 미사일 놀음에 매달리는 북한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더 찢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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