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 조사가 임박한 13일, 대검 중수부는 전날 노 전 대통령의 '선전포고'에 대해 "그분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해선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 수사는 정치 영역이 아니라 수사 사법의 영역"이라고 일축했다.

법조계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반발이 국민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도 공개적인 대응을 선택한 배경이 주목된다"며 "검찰 수사는 물론 법정에 가서도 검찰과 계속 싸워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봐야 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검찰이 수사단계에서 노 전 대통령을 확실하게 제압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최소한 1년 내내 양측의 지루한 공방이 언론을 장식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노 전 대통령의 노림수는?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2일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을 통해 "아내가 한 일을 몰랐다니 말이 되냐는 의문을 갖는 것이 상식에 맞는 일"이라고 하면서도 "중요한 것은 증거"라고 주장했다.

검찰을 상대로, 노 전 대통령 자신이 권 여사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100만달러를 받는 데 개입했다는 물증을 내놓으라는 얘기다.

그는 박 회장 진술의 신빙성과 검찰수사 과정을 문제 삼는 언급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저는 박 회장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무슨 특별한 사정을 밝혀야 할 부담을 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 회장이 검찰로부터 수사 외적인 압박을 받거나 모종의 딜(deal)을 통해 허위 진술을 한 것으로 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노 전 대통령과 가까운 한 법조인은 "노 전 대통령은 구속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라며 "토론에서 져본 적이 없는 노 전 대통령이 앞으로 법정에서 박 회장과 맞붙으면 누가 이길 것 같으냐"고 말했다.

그는 "박 회장 진술이 하나라도 깨지면 검찰 수사의 신뢰성이 통째로 의심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최근 "검찰 수사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드러난 것 아니냐"며 검찰 수사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연철호씨 어제 재소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가 14일 오전 1시쯤 서울 서초동 대검 찰청에서 두 번째 검찰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기 위해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10일 체포된 연씨는 12일 석방된 뒤 13일 오전 재소환됐다.

◆검찰의 대비책은?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와 조카사위 연철호씨가 박 회장으로부터 600만달러를 받는 데 직접 관여했다'는 박연차 회장의 진술이 워낙 구체적이라 노 전 대통령을 '공격'하기에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박 회장 진술 외에 정황 증거도 일부 공개했는데, 지난 2007년 6월 박 회장이 회사 직원 130명을 동원해 이틀 사이 급하게 100만달러를 환전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요구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지금까지 소환된 정치인들이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상대로 박 회장의 진술과 보강 자료를 제시했을 때, 그들 대부분이 언론에 나오지 않은 부분까지 순순히 자백했다"며 박 회장 진술의 신빙성에 확실한 무게를 뒀다.

그는 또 "박 회장 같은 계산이 확실한 사업가가 연철호씨 같은 사람에게 순수하게 50억원을 줬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했다.

하지만 검찰과 노 전 대통령 간의 승부는, 검찰이 어떤 물증을 확보하고 있느냐에 달렸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근 검찰이 금품 공여자의 진술만을 가지고 기소한 몇몇 사건에서, 법원이 공여자 진술 일부분의 신뢰성을 문제 삼아 사건 전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박 회장의 청와대 출입기록을 확인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박 회장으로부터 500만달러를 받아 사용하는 데 관여했다는 물증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박 회장의 진술 번복에 대비해 조사 전 과정을 CCTV에 녹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관계자는 "우리도 나름대로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할 비장의 카드를 갖고 있다"며 "권 여사나 건호씨 소환 조사에서도 내보이지 않은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과의 '건곤일척'의 싸움에 자신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