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우간다의 심장을 뛰게 만든 '신의 손'

조선일보
  • 한경진 기자
    입력 2009.04.14 03:04 | 수정 2009.04.14 10:15

    삼성의료원 정예멤버들 꼬박 24시간 비행후
    4일간 심장병 수술… 죽어가는 환자 6명 살려

    지난달 29일 오후 3시 한국 의료진 7명을 태운 비행기가 우간다 수도 캄팔라 외곽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이들이 두바이아디스아바바를 거쳐 이곳에 도착하는 데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기온은 섭씨 29도. 두툼한 파카를 입은 청년과 민소매 셔츠를 입은 소년이 거리에서 엇갈렸다. 세계 각지에서 온 구호품 때문이다.

    박표원(朴表源·55) 교수 등 삼성서울병원 심장혈관센터 소속 의료진 7명은 붉은 흙먼지가 이는 도로를 달려 우간다 최대 규모(1500병상)의 물라고 국립병원에 닿았다.

    지은 지 47년 된 허름한 건물 안에 2년 전 사우디아라비아 왕족이 기증한 최신형 인공심박동기(수술 도중 혈액 순환을 유지하는 기계)와 인공심폐기(수술 도중 심장과 폐가 멈추지 않게 하는 기계)가 있었다. 한쪽엔 국제자선단체들이 기부한 300만원짜리 인공판막 10여개도 보였다.

    병원 직원들이 "건물이 낡은 데다 기술이 없어서 기계가 있어도 무용지물"이라고 하소연했다. 중환자실에 인공호흡기가 딸린 고급 침대가 있었지만 벽에 의료용 가스가 나오는 시설이 없어 어쩌다 인공호흡기를 돌리려면 4~5시간마다 산소탱크를 굴려와서 교체해야 했다. 자체적으로 개심(開心) 수술을 할 능력이 없다 보니 사우디 왕족이 기증한 기계와 국제단체에서 준 인공판막을 쓸 일도 없었다.

    박표원 교수는 "솔직히 두려웠다"고 했다. 그는 32년차 베테랑이다. 서울에서 1년에 250~300건씩 심장 수술을 한다. 그래도 수술실 안에도 파리와 모기가 날아다니는 우간다에서 4일간 수술 6건을 할 생각을 하니 아득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팀이 우간다에 간 데는 우간다 국적의 한국인 사업가 김성환(57)씨의 힘이 컸다. 우간다 주재 명예 한국영사인 김씨는 지난해 4월과 9월, 자기 돈 15만달러(당시 환율 1억5000만원)를 들여 우간다 환자 6명을 한국에 데려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심장수술을 해줬다.

    그는 본지와 통화에서 "우간다 상류층은 영국에 가서 1인당 1만5000~2만5000달러를 들여 심장 수술을 받지만 하루 벌이가 1달러(1000원) 안팎인 서민들은 변변한 치료도 못 받고 목숨을 잃는 게 현실"이라며 "내 돈을 써서라도 한국 의료진을 우간다 병원에 초청해 기술을 전수받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삼성의료원 의료진이 지난달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6명의 심장병 환자를 살리고 돌아왔다. 앞줄 왼쪽부터 양지혁 흉부외과 교수, 박표원 흉부외과 교수, 이상민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뒷줄 왼쪽부터 김서국 간호사, 이여진 간호사, 임민경 간호사, 백인창 체외순환사./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박 교수는 김씨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는 지난 1월 물라고병원을 돌아보고 귀국해서 '정예' 멤버들로 팀을 짰다. 이상민(여·47·마취통증의학과)·양지혁(39·흉부외과) 교수, 백인창(44) 체외순환사(수술 도중 환자의 몸에 정상적으로 피가 돌도록 관리하는 이), 임민경(여·38)·이여진(여·33)·김서국(30) 간호사 등이 모였다.

    김씨가 이들의 비행기 값과 의료장비 수송비용 등 6만달러(약 8000만원)를 댔다. 박 교수팀은 무보수로 봉사하기로 했다. 삼성서울병원이 1000만원 상당의 약품을 지원했다.

    몸에 연결하는 각종 튜브, 피를 모아두는 병, 소독용 방수포, 실, 봉합사, 인공판막…. 박 교수팀이 우간다에 싸 간 짐만 가로 50㎝·세로40㎝·높이 35㎝짜리 박스로 29개 분량이었다. 현장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물라고병원의 수술실 배치도까지 세세하게 미리 알아봤다.

    지난달 30일 오전 7시30분 33㎡(10평)짜리 수술실에서 한국 의료진이 스코비아 아필리(Apili·17)양의 심장을 열고 '심방중격결손' 수술을 했다. 심장의 좌우 심방 사이에 꼭 있어야 할 얇은 막이 없어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쁜 병이다.

    물라고병원 흉부외과 의사 4명이 수술대 뒤편에 서 있다가 1명씩 돌아가며 수술을 거들었다. 마이클 오케초(Oketcho) 교수는 "최소한의 인원이 빠른 솜씨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인상적이었고, 직접 수술을 거들면서 많이 배울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지난달 31일에는 에블린 아디키니(Adikini·21)씨가 우간다에서 최초로 인공판막 치환수술(망가진 심장판막을 인공판막으로 바꾸는 수술)을 받았다. 넬다 바다루(Badaru·24)씨, 마거릿 아시모(Asimo·44)씨와 데이비스 칼레마(Kalema·29)씨 등이 다음 차례였다.

    마지막 환자는 지난 2일 심장판막 성형수술과 심방중격결손 수술을 받은 주디스 코브웨니(Kobweni·21)씨였다. 김서국 간호사는 "왼쪽 가슴에 칼로 난도질한 흉터가 있어 마음이 짠했다"고 했다. 코브웨니씨가 어린 시절 통증을 호소할 때마다 가족들이 민간요법을 시도한 흔적이었다.

    박 교수팀이 모든 수술을 마치자 우간다의 각종 매체가 앞다퉈 인터뷰를 청했다. 지난 4일에는 요웨리 무세베니(Museveni) 대통령이 대통령궁으로 박 교수팀을 초청해 감사를 표했다.

    이상민 교수는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한국의 선진 의료기술을 필요로 하는 나라들을 찾아 생명을 살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우간다 땅에서 최초로 인공판막 치환수술을 받은 아디키니씨는 "병은 심한데 돈이 없어서 막막했다"며 "내 심장은 다시 뛰고 있고, 나는 한국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간다 현지 영자지‘The New Vision’3월 31일자에 실린 삼성의료원 의료진의 수술 모습./삼성의료원 제공
    우간다에서 심장수술을 도와주고 온 삼성의료원 의료진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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