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만에 아버님 유해봉환… 이제 한(恨) 풀어"

조선일보
  • 최우석 기자
    입력 2009.04.14 03:19

    미(美)서 독립운동 펼친 최능익 선생 아들 하워드 최

    하워드 최 씨.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해외안장 애국선열 유해봉환식에 참석하기 위해 12일 입국한 하워드 최(82)씨는 "이제 한을 풀었다"면서 "아버님이 좋아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부친은 일제 강점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를 조직, 독립운동을 편 최능익 선생.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었다. 1976년 세상을 뜨기 직전에도 고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밝혔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최옹은 어린 시절 부친이 독립운동한다며 한인 교포들을 대상으로 후원회를 조직하던 일을 생생히 기억했다.

    "유년기 시절 아버지를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1930년대 LA에는 한인 1500여명 정도가 살고 있었는데, 모이면 대한독립이 늘 화두였습니다. 어린 시절 항일운동을 위해 몸바친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크면서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게 됐죠."

    그는 1939년 태평양 전쟁 발발 직전, 부친과 함께 "일본에 전략 물자 수출을 중단하라"는 띠를 두르고, 미 연방 정부 건물과 일본 영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차대전 중에는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버튼을 달고 다녔다. 일본인으로 오해받기 싫어서였다.

    1945년 총을 들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곧바로 미 해군에 입대했다. 태평양 전쟁에 나가 일본을 상대로 싸우겠다는 생각이었다. 필라델피아에서 훈련받던 중 전쟁이 끝났다.

    마침내 대한 독립이 이뤄졌지만, 한국에서 6·25 전쟁이 터졌다. 최옹은 1951년 미 해군 소속으로 재입대, 인천 앞바다에서 수뢰 탐지 작전에 참여했다. 대원 32명과 함께 한강 하구에서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한국전쟁이 끝나자 최옹은 미국으로 돌아와 우드베리 대학을 졸업한 뒤 가족들과 함께 농산물 포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다지 넉넉한 삶은 아니었지만, 대한독립 투사의 자식으로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고 그는 자부했다.

    13일 오전 서울 동작구 현충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유해봉환식에서 부친의 영정이 국군의 사열을 받는 순간 최옹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최옹은 "최근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와 골프의 앤서니 김을 보면 한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피는 물보다 진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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