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낡은 차를 새 차로 교체할 때 세금을 지원하겠다는 정부 방안에 말들이 많다. 반대하는 사람은 국민 세금으로 특정 산업만을 지원하고 일부 소비자만 혜택을 본다는 점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이번 세금 지원책은 당초 내수경기 진작을 위해 마련된 방안으로 자동차산업을 지원하기 위함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선진국들도 직·간접으로 자국 자동차산업을 지원하고 있고, 자동차산업의 국가 경제에 미치는 크나큰 파급 효과도 고려됐다고 한다.

나는 이번 지원책이 침체된 내수경기의 불씨를 지펴보려는 정부의 비책(秘策)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정부가 산업정책에 깊숙이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상징적 사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경제불황기에는 보통 정부의 힘이 막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부실기업에 제공되는 구제금융, 경기회복을 위한 세제지원 및 경기부양책을 위해 정부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집행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어윈 스텔처는 이번 경제불황의 결과 세계가 '시장주도 경제'에서 '정부정책 주도 경제'로 바뀔 것이라고 예견한다. 과거엔 각 회사의 재무제표와 손익계산서를 보고 주식 투자를 했다면, 지금은 정부의 의중을 읽는 편이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요즘 정부는 기업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비대한 정부가 경제불황을 돌파할 해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적 경제위기가 지난 30년 자유시장주의를 부르짖었던 미국으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우린 자유시장을 더는 신뢰하지 않게 된 것 같다. 한때 미국의 성장을 부러워했던 유럽 국가들은 자유시장을 조롱하며 강력한 규제를 주장하고, 강한 정부만이 인간의 사적 탐욕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이번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을 일부 금융시스템의 오작동 문제로 본다면, 그 해결책은 불량 부품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국한돼야 할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의 몰락으로 확대 해석해 경제위기의 원인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사안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보수 경제학자들은 정부 간섭이 경제 발전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정책이 시장의 선택보다 이번 위기를 잘 처리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버리라는 것이다.

정부가 자원을 배분하기 시작하면 기업은 생산성 향상보다 대정부 로비로 신경을 곤두세울 것이고, 그 결과 부패가 만연될 가능성이 커진다. 로비에 흔들리지 않는 청렴한 정부라 할지라도 복잡한 시장환경을 이해하지 못해 자원배분을 비효율적으로 시행할 여지마저 있다.

난 세계적 경제위기를 맞이하면서 대한민국이 무척 운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었다. 경제위기를 전후해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에는 진보 정권이 들어섰지만 우린 자유시장주의를 신봉하는 보수진영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진보정권은 보호무역, 구제금융, 임원 보너스 지급 제한 등 자유시장주의 원칙에 벗어난 정책을 지지하고 있지 않은가.

반면 우리 정부에는 자유시장경쟁의 힘을 믿는 인사들이 많다. 정권 초기부터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전봇대 뽑기'로 비유된 기업규제 철폐를 정책의 1순위로 삼지 않았던가.

이런 정부가 자동차 세제지원과 같은 정책을 시행하려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편으론 기업규제 철폐하느라 동분서주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산업정책을 입안하느라 시끄럽다. 자유시장주의자라면 불필요한 규제도 하지 말고 특정 산업에 특혜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자유시장주의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묵묵히 기다리라고 권한다. 시장선택보다 똑똑한 정책을 내기는 어렵기 때문에, 불필요한 정부 간섭은 시장에 불확실성과 위험을 가중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죄책감이 든다면 우리 기업환경 중 가장 약점으로 지적돼온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에 전념하는 것도 좋은 대안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