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75]

    입력 : 2009.04.08 03:13

    제6장 천주와 양대인(洋大人)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에 종현(鍾峴:명동)성당도 둘러보았고, 양교사(洋敎士:서양신부)들도 먼빛으로 보았습니다만, 이번 기회에 천주학 교당과 양교사를 좀더 가까이에서 한번 보아두고 싶어서요. 아버님의 엄명이 돌아와 교리공부를 하고 세례를 받으라는 것이었지만, 저는 저대로 천주학 세례를 받는다는 게 어떤 일인지 알아볼 만큼은 알아보고 그 명을 받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명근이 그와 같이 솔직하게 대답하자 안태건도 선선히 명근이 따라오는 것을 허락했다.

    "알았다. 그럼 너도 채비해라."

    그러고는 중근에게 말했다.

    "점심 뒤에 바로 떠나 해지기 전에는 마렴에 이르러야 하니 말을 준비하도록 해라. 네가 좋아하는 구렁말과 내 가라말로 하면 좋겠다. 명근이 말을 못 타도 너와 내가 번갈아 태워주면 걷는 것보다 몇 곱절 빠르게 갈 수 있을 것이다."

    안태건과 중근 명근 세 숙질(叔姪) 간이 안악 마렴에 이르렀을 때는 짧은 초겨울 해가 뉘엿할 무렵이었다. 박학사 이보록(바오로)이 일러준 대로 안악 본당을 찾아간 그들은 겹집의 내벽을 터 예배당으로 쓰는 듯한 기와집 앞에서 말을 세웠다. 모퉁이 감나무에 말고삐를 묶고 교당 마당을 살펴보니 어떤 키 크고 수염 덥수룩한 서양인 하나가 겨울날의 마지막 햇살을 뒤로하고 무언가 검은 상자 하나를 든 채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저이가 법국 사람인 홍 교사인 모양이구나. 그런데 뭘 하고 있는 거냐?"

    일러스트=김지혁

    안태건이 눈으로는 말고삐 묶을 데를 찾으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물었다. 진작부터 눈을 반짝이며 빌렘 신부가 손에 들고 있는 검은 쇠 상자를 바라보고 있던 명근이 아는 체를 했다.

    "지금 교당 사진을 박고 있는 듯합니다. 맞아요, 저거 요즘 새로 나온 사진틀입니다."

    그러면서도 감탄 어린 두 눈은 여전히 사진기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빌렘 신부를 살피기 시작했는데, 그때까지도 명근의 눈길에는 사진기를 바라볼 때의 감탄이 그대로 어려 있었다. 중근도 진작부터 빌렘 신부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중근에게는 엄청나 보이는 몸집과 털북숭이 얼굴로 사진 찍는 데 몰두해, 지는 햇살을 등 뒤로 받으며 교당을 향하고 구부정하게 서 있는 모습이 기괴하면서도 묘한 신비감을 자아냈다. 그가 바로 그로부터 13년 뒤 자신에게 이 땅에서의 마지막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베풀게 되리라는 게 그때 이미 어떤 막연한 예감으로 중근에게 와 닿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이쿠, 이거 안 초시(初試)님 아니십니까? 해가 뉘엿한데 여긴 웬일이십니까?"

    갑자기 누가 성당 문안에서 나오며 안태건에게 아는 체를 했다. 중근이 보니 달포 전에 교리교사로 청계동에 왔던 두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중근 명근과 마찬가지로 빌렘 신부를 살피는 데 눈길을 빼앗기고 있던 안태건이 퍼뜩 그를 알아보고 받았다.

    "형님께서 홍 교사(洪敎士)님께 급히 전해달라는 말씀이 있어 청계동에서 달려오는 길입니다. 저기 둘은 홍 교사님을 뵙고자 하여 나를 따라온 조카들이고……."

    그러자 교리교사로 청계동에 왔던 사람이 다시 중근을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안 진사댁 새서방님이군요. 안 진사님께서는 강녕하신지요?"

    그때야 비로소 사람들의 기척을 느꼈는지 빌렘 신부가 사진 찍기를 멈추고 그들 쪽으로 걸어왔다.

    "이 사람들을 아시오? 무슨 일로 여기 온 거요?"

    빌렘 신부가 청계동에 교리교사로 왔던 사람에게 무뚝뚝하게 물었다. 교리교사가 얼른 대답했다.

    "청계동 안 진사가 보낸 사람들입니다. 저기 저분은 안 진사님의 동생분이 되고 이분은 안 진사의 맏아드님이 되십니다. 또 한분은……."

    그때 안태건이 빌렘 신부에게 꾸벅 머리를 숙이고 나서 끼어들어 명근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아울러 자신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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