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친형인 건평씨가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구속)을 통해 여당 핵심 의원에게 '박연차 구명 로비'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각종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일각에선 신·구 정권을 넘나들며 전방위(全方位) 로비를 벌였던 박 회장 문제를 둘러싸고, 지난 정권 실세였던 건평씨와 현 정권 일부 인사들 사이에 '막후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추부길은 盧측과 MB측 잇는 핫라인"
검찰은 추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박 회장측에 추씨를 소개한 사람이 건평씨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건평씨와 추씨가 그 이전부터 가까운 사이였다는 점을 입증한다.
여권 내부 인사들은 추씨가 지난 2007년 대선 이전에 MB캠프와 노 전 대통령측 사이의 핫라인 역할을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추씨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2007년 여름 건평씨를 처음 만나 연락해 온 사이"라고 시인한 적이 있다. 추씨는 이명박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주선으로 MB캠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권 인사들은 당시 추씨가 건평씨를 만나 BBK 사건 처리 등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반대로 건평씨의 요구를 MB캠프에 전달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고 전하고 있다. 건평씨가 추씨를 '로비 창구'로 선택한 것은 이런 인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로' 대통령 패밀리는 건드리지 말자?
추씨의 '핫라인' 역할이 대선 이후까지 계속됐다는 것도 이번 사건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추씨의 역할은 '박연차 구명 특사(特使)'로 바뀌었다.
당시 촛불시위와 청와대 자료 유출사건 등으로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감이 커진 현 정권의 정서를 누구보다 잘 알던 추씨가 노 전 대통령까지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있는, 지난 정권의 '약한 고리'를 방어하고 나선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과 정치권에선 추씨가 여당 핵심의원에게 전했다는 건평씨의 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건평씨는 박 회장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가 막 시작된 지난해 여름, 추씨에게 "여권에 '서로 대통령 패밀리(family)는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하자. 박연차는 우리 쪽 패밀리'라고 전하라"고 했다고 한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현 정권이 박 회장을 구속하려 할 경우, 다치는 건 '노무현 패밀리'만이 아닐 것이라는 엄포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박 회장은 구속됐지만 정치권에선 박 회장이 지난해 말 구속 직전에 노 전 대통령측과 접촉했으며, 신·구 정권을 넘나든 자신의 로비에 관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부탁받은 與 관계자, 한 명뿐일까
추씨가 여당 핵심 의원을 상대로 박 회장 구명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문제의 의원이 5일 스스로 언론에 이를 털어놓으면서 알려졌다.
그가 자발적으로 '해명'하고 나선 이유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검찰 주변에선 추씨의 휴대전화 통화내역 조회 등 박 회장 구명로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전되자, 미리 차단막을 친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추씨가 로비를 시도한 '몸통'은 자신이 아니라 따로 있다는 식의 메시지를 던진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추씨는 지난해 9월 1일 박 회장측 관계자를 만나 "박 회장이 검찰 고발을 당하지 않도록 알아보고 힘써보겠다"고 한 지 8일 후에야, 2억원을 받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추씨가 2억원을 개인적으로 써버린 점 등으로 미뤄, 박 회장이 추씨를 매개로 제3자에게 거액을 줬을 수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