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74]

    입력 : 2009.04.07 06:08

    제6장 천주와 양대인(洋大人)

    "지금 이 나라가 어찌 돌아가다니? 대군주 폐하께서 아라사 공관으로 파천하시어 나라 안팎이 뒤숭숭하다는 말은 들었다만, 왜 서울에 무슨 또 다른 일이 있느냐?"

    중근이 그렇게 덧붙여 서울에서 방금 돌아온 명근에게 궁금해하는 것을 슬며시 털어놓았다. 명근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명색 한 나라의 임금이 제 땅에 앉아서 스스로 보존하지 못하고 남의 나라 공사관에 피신한 꼴도 말이 아니거니와, 일본을 대신한 서구 열강이 그 틈을 타고 이놈 저놈 덤벼들어 이 땅의 이권을 훔쳐 먹고 알겨먹고 하는 난판도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철도부설권과 금광채굴권 삼림채벌권 등이 차례로 그들에게 넘어가니, 대군주 폐하께서 러시아 공관에 더 오래 머물다가는 조선은 뼈도 제대로 추리지 못할 것입니다. 독립협회가 일어난 것은 그 때문인 듯합니다만 장한 것은 자주독립과 충군애국(忠君愛國)이라는 그 주의 주장뿐입니다."

    "그래도 얼마 전에는 서대문에 독립문이라는 걸 세웠고, 그 세력도 만만치 않다던데."

    "하기야 독립협회를 세운 서재필이라는 사람은 셋째 아버님(안태훈)께서 갈 뻔했던 일본 유학을 먼저 다녀온 사람으로, 갑신정변 때 미국으로 달아났다가 작년 사면 소식을 듣고 11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온 개화파지요. 거기다가 재주 많은 이완용이 위원장이 되고 이상재·남궁억 같은 이들도 위원으로 있으며, 어려울 때마다 셋째 아버님을 뒤보아주시던 김종한(金宗漢) 대감도 그 협회의 위원으로 계십니다. 회원도 2천명이나 된다지요, 아마. 하지만 아직 인민 대중은 가담하지 않고, 조정의 고관들과 이른바 신지식 층이라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만 모여 공론을 펼치고 있으니, 사교 구락부나 다를 게 무엇이겠습니까?"

    일러스트=김지혁

    "그것은 그것대로 그들의 길이겠지. 다만 이제 막 시작한 길이라 헤매는 듯 보일 뿐일 거다. 우리 청계동의 천주학처럼……."

    그러자 안명근이 가만히 중근을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죽여 물었다.

    "그럼 형님도 정말로 믿는 거요? 천주학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다고?"

    "적어도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 되어 서로 믿고 뭉치기만 한다면."

    "아버님 성화로 불려오기는 했지만 나는 정말 모르겠소. 물 건너서 온 천주와 양대인(洋大人)이 반석이요 보루일 수 있다니……."

    "나도 들은 말이다만…… 먼저 믿어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중근이 그렇게 말을 어물어물 마무리 짓고 있는데 갑자기 마당에서 자신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응칠이 방에 있나?"

    들어보니 넷째 아버지 안태건이었다. 중근이 문을 열고 내다보자 안태건이 마당에 선 채 말했다.

    "너 나하고 안악 좀 다녀와야겠다. 셋째 형님께서 마렴 본당을 찾아가 홍교사(洪敎士:빌렘 신부)에게 문안드리고 오라는구나. 기별할 것도 있고……."

    "무슨 기별입니까?"

    "성탄축일 전 교리문답 말이다. 아무래도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게 어렵다는구나. 홍교사에게 여기 오는 것을 보름만 더 늦춰달라고 일러주어야겠다."

    그때 명근이 무슨 생각에선지 중근의 등 뒤에서 얼굴을 내밀며 안태건에게 물었다.

    "넷째 아버님, 저도 중근 형님과 함께 따라가면 안 될까요?"

    "응 너도 함께 있었구나. 보자 그게……."

    갑작스런 명근의 물음에 잠시 그렇게 우물거리며 답을 미루던 안태건이 명근에게 불쑥 물었다.

    "우리가 거기 가는 까닭은 너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너는 왜 거기 따라나서려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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