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진 논설위원

1997년 1월 23일 5조원이나 대출을 받았던 한보그룹이 부도가 나며 경제까지 휘청거릴 조짐을 보이자 김영삼 정권은 대검 중수부에 수사를 맡겼다. 특혜대출 관련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정권까지 책임을 져야 할 사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검찰은 1월 31일 부정수표단속법으로 일단 구속한 정태수 한보 회장에게 돈을 준 정·관계, 금융권 인사들을 대라고 추궁했다. "아들들을 구속할 수도 있다"는 말에 정 회장은 며칠 만에 '리스트'를 진술했다.

정 회장 진술은 당시 청와대와 정권 핵심들에게 알려졌다. 검찰은 '조율'을 거쳐 정 회장이 진술한 리스트에서 뺄 것 빼고 처리할 순서를 정했다. 당시 여당의 실세와 야당의 2인자였던 홍인길 신한국당 의원과 권노갑 국민회의 의원의 수뢰 공개와 소환이 맨 마지막이었다. 두 의원 연루를 극적으로 공개함으로써 정치적 논란 소지를 없애고 수사도 빨리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계획은 1997년 2월 5일자 조선일보의 "정 회장이 홍·권 의원에게 각각 7억,5억원을 줬다는 진술을 했다"는 특종 보도로 헝클어져 버렸다. 수사 말미에 공개돼야 할 내용이 초기에 보도돼 버렸기 때문이다. 본지에 수사 내용을 알린 검찰 내부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이 정권 하수인으로 엉터리 수사를 하는 데 대한 검찰 내부의 울분에 찬 제보였다.

이 특종 보도로 검찰은 물론 정치권까지 발칵 뒤집혔다. 당사자인 홍 의원은 "나야 터래기(깃털의 사투리) 아이가"라고 말해 "그럼 몸통은 누구냐"는 의혹이 번졌고 부실 수사 논란도 눈덩이처럼 커졌다. 시나리오대로 수사한 검찰은 2월 19일 국회의원 4명과 장관 1명, 은행장 2명을 구속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수사팀을 교체해 재수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검찰은 재수사로 정치인 33명을 사법처리하고 전·현직 청와대 경제수석과 은행장 3명을 형사처벌하고도 다시 '몸통'을 수사하라는 여론에 밀려 현직 대통령 아들 김현철씨까지 구속해야 했다.

지금 대검 중수부가 수사하고 있는 박연차 리스트 사건은 무차별 금품 로비 스타일부터 한보 사건과 닮았다. 한보 수사 때 "PK에 의한 PK를 위한 수사"라는 말이 있었다. YS 정권과 검찰의 주류인 PK가 PK정권 살리기 수사를 한다는 지적이었다. 박연차 리스트도 주로 PK 인사들이 수사대상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수사 최고 책임자인 검찰총장도 지난 정권이 임명한 PK 출신이다. 그 때문인지 검찰총장은 정치적 중립을 유난히 강조하며 돌다리도 두드리듯 조심스럽게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주부터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다. 검찰은 3월 중순 수사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지난주 소환자 없이 호흡을 조절했다. 주말엔 수사 관계자가 "박연차도 검찰도 지쳤다. 사정(司正) 피로감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반팔 입을 때까지 수사하겠다"던 검찰이 태도를 바꾼 셈이다.

이에 대해 '리스트'뿐만 아니라 세무조사 무마 로비까지 수사가 현 여권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정권측에 의해 제동이 걸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 검찰 주변에서 돌고 있다. 그것도 지난주 "검찰이 공식 라인인 청와대 민정수석실에는 수사상황을 보고하지 않으면서 다른 정권 핵심과 사적(私的)인 경로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돈 직후부터 그런 관측들이 나온다. 물론 검찰은 "어떤 외부 영향도 없다"고 펄쩍 뛰며 부인했다. 총장은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고까지 했다. 검찰 말을 믿고 싶지만 최근 검찰의 모습은 "검찰과 현 정권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이번 사건은 지난 정권 인사들과 현 정권 인사들의 비리가 섞여 있다. 그래서 검찰의 칼이 구정권에만 들고 현 정권에는 무딘 것은 아닌지 모든 국민이 주시하고 있다. 검찰이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공식 계통이든 사적 경로든 정권측에 수사상황을 보고하지 않는 원칙부터 세워야 한다. 권력에 보고하고 지침을 받으면서 그 권력을 수사할 수는 없다. 그건 12년 전 한보 수사에서 검찰 스스로 뼈를 깎으며 배운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