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폭행 실패한 집 안에서 가해자 하룻밤 자고 나와"

조선일보
  • 최현묵 기자
    입력 2009.04.04 03:18

    뒤늦게 공개한 민노총 성폭행 진상보고서
    민노총·전교조 간부들 피해자 고소 의사 듣고 "알려지면…" 입막음 시도

    민주노총이 성폭행 사건에 관한 자체 진상규명특별위원회의 조사 보고서를 2일 뒤늦게 공개했다. 보고서가 작성된 지 3주 만으로, 검찰 수사가 끝나고 가해자 등을 기소하자마자 슬그머니 인터넷에 올렸다.

    보고서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충격적 내용들이 적지 않다. 특히 성폭행 가해자인 김상완(44) 전 민주노총 조직강화특위위원장(구속기소)은 강간에 실패한 뒤에도 피해자 집을 떠나지 않고 하룻밤을 지내고 나왔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김씨가 이석행 전 위원장의 도피와 관련해 민주노총을 보호하기 위해 성폭행을 시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반적인 성폭행범이라면 범행 시도가 실패하고 제3자가 현장에 도착한 상황에서 김씨처럼 태평하게 잠을 자진 못했을 거라는 것이다.

    "전교조간부, 가해자 쫓아내지 않아"

    문제의 강간 미수사건이 벌어진 2008년 12월 6일 자정쯤, 김씨를 피해 방문을 걸어 잠근 피해자는 평소 가까이 지내던 전교조 간부 A(여)씨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현장에 온 A씨는 그러나 김씨를 쫓아내거나 경찰을 부르지도 않았다. 보고서는 "피해자는 사건 당일 A에게 상황을 알리고 구조를 요청했으나 A는 피해자의 다급한 상황을 알고서도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분리시키는 등의 아무런 초기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교조의 또 다른 간부에 대해 보고서는 "C 역시 2008년 12월 6일 가해자가 피해자 집에서 자고 나온 것을 이틀 후에 인지하고도, 가해자와 지속적으로 만나는 과정에서 관련사실을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15쪽짜리 보고서는 곳곳에서 민주노총·전교조의 핵심 간부가 "조직 보위(保衛)를 내세워 조직적 은폐를 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D(전교조 전직 고위 간부)는 피해자로부터 고소 의사를 직접 듣고, 2008년 12월 23일과 29일 '이 사건이 알려지면 민주노총 및 전교조에 대한 음해와 부당한 공격이 가해질 것이며 악의적 언론보도로 피해자도 힘들어질 것'이란 말로 피해자의 고소 입장을 바꾸기 위해 끈질기게 설득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런 행위는 "조직 보위론을 내세워 민주노총의 내부 절차를 따를 것을 종용함으로써 피해자를 압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그러나 아직 '조직적 은폐'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지난달 20일 "보고서 내용 중 '조직적 은폐'의 의미는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쉽게 말해 "핵심간부가 한 것이지, 조직이 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이석행 전 위원장의 도피에 관해 피해자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한 정황도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민주노총과 전교조 고위 관계자, 민주노총 법률원 소속 변호사 등은 피해자를 불러 '민주노총 수사 대응 대책회의'를 12월 6일과 9일 두 차례에 걸쳐 열었다. 양 조직 간부들은 이 회의에서 피해자에게 "'김상완과의 오랜 친분에 의해 부탁을 받고 (이 위원장을) 숨겨줬다'고 진술하라"고 강요했다.

    수사 종료되자 슬그머니 공개

    민주노총은 보고서 공개 시점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조직 보위'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민주노총은 김상완이 검찰에 의해 구속 기소되고, 이 전 위원장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민주노총과 전교조 전 간부 등 4명이 불구속 기소된 직후에 보고서를 공개했다. 조직에 해가 되는 사실이 검찰에 알려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공개방식도 떳떳하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2일 오후 7시45분 인터넷 홈페이지 공지사항란에 '진상규명특별위원회 조사결과 보고서'를 슬그머니 올렸다. 홈페이지 구석에 작게 올린 데다, 애매한 제목 탓에 일반인들이나 조합원들은 쉽게 찾을 수도 없었다.


    [핫이슈] 민주노총 간부 ‘성폭력 파문’ 확대 기사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