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행정관 김모(43)씨가 방송통신위원회 직원, 케이블방송 업체 티브로드 간부 등과 룸살롱에서 만나 성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 청와대가 1일 정정길 대통령실장 명의로 대국민 사과문을 냈다. 정 실장은 사과문에서 "도덕적으로 가장 엄격해야 할 청와대 직원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점을 깊이 사과 드린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 한 점 의문도 남지 않도록 수사기관이 철저하게 조사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이날 김 전 행정관 사건을 생활안전과에서 수사과로 재배당하고, 김 전 행정관에 대한 업계의 로비 의혹까지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4시쯤 김 전 행정관을 마포서에 불러 5시간 동안 사건경위를 조사했다. 김 전 행정관은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언론에서 여러 의문이 제기된 만큼 모든 의혹을 해소하려고 한다"고 했다.

김 전 행정관은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모텔 객실에서 룸살롱 여종업원과 함께 있다가 단속 중인 경찰에 성매매 혐의로 붙잡혔다. 김 전 행정관은 모텔로 향하기에 앞서 인근 룸살롱에서 장모 전 청와대 행정관, 신모 전 방송통신위원회 과장, 케이블방송 업체인 티브로드 문모 팀장 등 3명과 함께 술을 마셨고, 티브로드 문 팀장이 180만원을 업체 명의 법인카드로 계산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이튿날(26일) 사건 개요를 청와대에 보고하고도, 언론의 취재에는 "김 전 행정관이 회사원이라고 주장해 28일 이후에야 언론 보도를 보고 청와대 행정관인 줄 알았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경찰이 사건을 축소하려 한다"는 비판이 일자, 경찰은 지난 31일 김 전 행정관 일행이 술을 마신 룸살롱을 압수수색해 신용카드 전표와 장부를 확보했다. 경찰은 김 전 행정관에게 술을 산 티브로드 팀장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제출받아 이 업체가 김 전 행정관과 방통위 직원에게 로비를 시도했는지를 수사하기로 했다.

경찰은 또 티브로드 팀장이 치른 술값에 성매매 비용이 포함돼 있는지도 확인 중이다. 티브로드 측은 "카드로 계산한 180만원은 당일 술값(85만원)과 밀린 외상을 합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술자리가 벌어진 25일은 방통위가 태광그룹 계열사인 케이블방송 업체 티브로드와 큐릭스홀딩스의 합병을 승인할지를 결정하기에 앞선 민감한 시점이었다. 태광그룹은 박연차씨가 회장인 태광실업과는 완전 별개의 회사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티브로드가 방통위에 로비하기 위해 김 전 행정관과 방통위 과장 등에게 술을 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티브로드는 국내 1위 케이블TV 사업자로, 전국에 15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를 소유하고 있다. 티브로드는 지난 3월 서울 지역 케이블TV인 큐릭스의 지분 70%를 2500억원대에 인수했다. 티브로드와 큐릭스의 합병이 최종 승인되면, 티브로드는 기존 가입자 281만 가구에 큐릭스 가입자(63만 가구)까지 모두 344만 가구를 확보하게 된다.

이태희 방통위 대변인은 "티브로드와 큐릭스의 합병은 지난 14일 회계사·변호사·교수 등으로 구성된 외부 심사단에서 '문제 없다'고 결론 내린 사안"이라고 말했다. 티브로드가 굳이 로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그러나 지난 30일 "방통위 담당 과장이 술자리에 참석해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합병 승인을 일단 보류했다.

케이블방송 업계 관계자는 "티브로드가 큐릭스와의 합병이 아닌 다른 사안을 로비하기 위해 김 전 행정관을 만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