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71]

    입력 : 2009.04.02 06:42

    제6장 천주와 양대인(洋大人)

    "벌써 우리 청계동에 천주의 역사(役事)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나도 그 얘기는 들어 알고 있다. 30년 전 병인박해가 있었을 때 여기에 꽤 큰 신자들의 마을이 있었다고. 그러다가 포졸들이 덮쳐 집은 불살라지고 신자들은 모두 해주로 끌려갔다더구나. 거기서 더러는 죽음을 당하고 더러는 배교(背敎)하여 목숨을 건졌는데, 운 좋게 낌새를 알아차리고 포졸들이 이르기 전에 성물(聖物)을 파묻은 뒤 달아난 사람들이 있었다더니, 그들이 돌아온 것 같다. 이 청계동에 다시 천주의 뜻이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증좌이다. 가 보자."

    안태훈이 중근에게 그렇게 말하고 다시 천 서방을 재촉했다.

    "앞서게. 실성한 늙은이들이 아니라 귀한 손님이 오신 듯하네."

    안태훈 부자와 천 서방이 폐가 터에 이르러 보니 아직도 늙은 내외가 무너진 돌담 곁에 퍼질러 앉아 울고 있었다. 슬픔과 한이 너무 절실해서인지 얼른 보기에는 둘 모두 실성한 이들 같기도 했다. 그들에게 다가간 안태훈이 그 사이 제법 익숙해진 천주교인들의 말투로 물었다.

    "형제자매님들, 여기 예비신자 안태훈이 문안 드립니다. 무슨 일로 여기서 이리 울고 계신지요? 짐작 가는 데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저무는데다 날까지 차니 감환(感患)이라도 들까 걱정됩니다."
    일러스트=김지혁
    그 말에 영감이 먼저 눈물을 씻으며 대답했다.

    "형제라니 과분한 말씀입니다. 저는 이미 30년 전에 배교하여 겨우 목숨을 건진 냉담자(冷淡者)이고, 이제는 세례명조차 잊었습지요. 저 할멈이 하도 성화라서 여기까지 그저 따라왔을 뿐인데, 할멈이 저리 우니 왠지 나도 하염없이 눈물이 나는구먼요."

    "자매님, 여기가 정도 한도 깊은 곳인 듯합니다만 날이 차고 곧 어두워질 것입니다. 우시더라도 저희 집으로 가서 우시고 시월 무서리라도 피하시지요."

    안태훈이 다시 울고 있는 할멈을 달랬다. 그래도 한참이나 소리 없이 흐느끼던 할멈이 그냥은 일어날 수 없다는 듯 넋두리처럼 가슴속을 털어놓았다.

    "진사어른께서 장차 교우가 되실 거라니 몇 말씀 드리겠수. 그래야 이 저린 속이 조금이라도 풀릴 듯하니 말이우. 나도 진사어른과 본관을 같이 쓰는 안(安)가 성인데, 세례명은 세실리아라 합네다. 사십년 전 신혼 때 남편 박 요셉과 함께 세례를 받고 독실한 신자 여남은 호와 이곳에 숨어 살다가 병인박해를 맞게 되었수다. 그때 이 마을에는 당목(堂木)으로 섬기던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우리 교우들이 미신이라 하여 베어버린 게 화근이 된 거유. 마을의 비교인(非敎人)들이 그 일에 앙심을 품고 해주부에 우리를 고발한 때문이외다. 다행히도 비교인 중에 나를 가엾게 여긴 이가 있어 미리 일러주는 바람에, 남편과 나는 십자가와 성물을 저기 돌담 아래 묻고 미리 달아날 틈을 얻었소만, 남편은 숨어 다니던 중에 끝내 잡혀 순교하고 말았지요. 그 뒤 나는 이리저리 교인마을을 떠돌다가 박해가 그친 후에야 해주로 돌아와 저 양반을 만나게 되었수다. 30년 전 옛날 여기서 이웃으로 살았는데, 다시 만나보니 저이 안사람은 병인박해 때 해주 감옥에서 병들어 죽고 저 양반만 배교하여 살아남았더구만요. 그래도 배교를 뉘우치며 슬퍼할 줄 알고 다시 믿어보려는 정성이 갸륵해 함께 의지해 산지 벌써 십여 년 넘었수. 그러다가 근래 우연히 이 청계동에 다시 천주의 은총이 비치기 시작한다기에 저 양반을 달래 이리로 와 봤수. 그리고 전 남편과 함께 묻은 십자가와 도기 성상(聖像)을 찾아보려 했지만, 벌써 40년이 지나서인지 찾을 길이 없구려. 다만 아득한 옛일과 까맣게 잊고 살았던 옛사람들이 두서없이 떠올라 사람의 넋과 얼을 이리 헝클어놓는구려."

    그러면서 한참이나 더 흐느꼈다. 말투로 미루어 할멈은 안태훈을 잘 알고, 그들 내외도 근래에는 두라방 근처에서 살고 있었던 듯했다. 그런 늙은이 내외를 달래 집으로 들인 안태훈은 다음날 그들에게 거처를 마련해주며 청계동에 머물러 살게 했다. 특히 세례명을 세실리아라고 하는 그 할멈은 벌써 40년이나 신심(信心)을 지켜온 터라, 박학사(博學士) 이 바오로를 도와 아녀자들에게 교리를 전하는 일을 맡길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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