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의 이우혁, 4년 반 만의 귀환

입력 2009.03.31 15:09 | 수정 2009.03.31 15:12

“댄 브라운한테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예수 얘기 다 믿느냐고 물어보세요.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할걸요?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소재일 뿐입니다.”

지난 16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 로비에서 만난 이우혁 작가는 환단고기 이야기에 웃음부터 터뜨렸다. 그는 민족주의자나 심지어 국수주의자라고 비난 받는 것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환단고기로만 비난 받는 걸 보니 이제 작가로는 인정 받는 모양”이라며 “예전에는 무식하다, 글 못 쓴다는 말도 숱하게 들었다”고 했다.



◆이우혁의 귀환

여자의 몸을 통해 부활하려는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퇴마사들의 활약을 그린 퇴마록(退魔錄)의 작가 이우혁이 곧 새 작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우혁은 2004년 8월, ‘치우천왕기’ 9권을 끝으로 작품활동을 중단했었다. 그리고 작년 7월, 4년여 만에 자신의 홈페이지에 ‘모든 세계관의 정리가 끝났다‘며 컴백을 선포했다.

“지난 몇 년의 슬럼프는 독자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글이 안 나오는 걸 어떡합니까. 치우천왕기(蚩尤天王記)가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거대한 세계관이 막 머릿속에서 도는데, 이걸 먼저 정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어요. 연구실에 처박혀있었죠.”

치우천왕기는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10권과 11권을 같이 낼 준비를 하느라 조금 늦어지고 있다. 치우천왕기 외에도 많은 후속작들이 준비되고 있다. 쉬는 동안 쌓인 일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바이퍼케이션, 푸가토리움을 준비 중입니다. 퇴마록 외전은 우려먹는 것 같아서 영 내키지 않네요. 귀전종결자는 쓰지 않을 겁니다. 종결자라는 테마가 융세록으로 발전했거든요. 융세록은 내 세계관을 집대성한 작품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판타지로 꿰뚫는 글인데, 퇴마록이나 치우천왕기는 융세록의 극히 일부에 불과해요. 다만 이건 시간이 필요하죠.”

이우혁 마니아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책은 ‘파이로매니악’이다. 파이로매니악의 출판이 중단되었던 사정을 들어봤다.

“3권을 낼 동안 나한테 1원도 안 주면서 마지막 원고만 달라는 거야. 원고를 안 주니까 고소가 들어왔어요. 맞고소하고 재판하고. 이기긴 했는데, 일류 변호사 쓰는 바람에 돈만 엄청 들고 건진 게 없네요. 원고는 다 넘겼으니까 출판사에서 마음만 먹으면 낼 수 있어요.”

◆작가가 되기까지

“퇴마록 첫 회 쓰고 나니까 아는 게 없었어요. 신부와 목사의 차이도 모를 때죠. 다음 날부터 온갖 책을 사 모았습니다.”

작가 이우혁과 퇴마록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장장 19권에 걸친 퇴마록의 대장정이 끝났을 때, 독자들은 아쉬움과 함께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우혁은 출판사 독촉에 쫓겨 급하게 썼던 세계편 외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다고 자부한다.

“말세편은 국내편 쓸 때부터 구상한 시놉시스가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습니다. 모든 게 예정된 결말 그대로였죠. 하지만 독자들은 본 주제인 말세보다 퇴마사에 집착하더군요.”

이우혁은 “퇴마사가 목숨 바쳐 지킨 가치를 주목해 달라”며 “초기처럼 감성적 에피소드에 의존했다면 나는 인터넷 센세이션으로 끝났을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글을 쓴다는 자각이 없었다. 월급이 100만원도 안 되던 월급쟁이는 인세로 받은 500만원으로 최고급 오디오를 사고 나서야 작가가 된 것을 실감했다. 그에게 있어 퇴마록은 애환이 깃든 수련작이다.

“처음에는 글을 말도 못하게 못 썼죠. 나는 글을 처음 써보는 ‘공돌이’니까 흉내내지 말자, 도움 받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나만의 문체가 잡히기 시작한 건 말세편부터이고, 이젠 국문과 교수들과 내 글에 대해 토론도 합니다. 퇴마록의 독자들에게 선물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걸 끝으로 이제 퇴마록은 잊고 싶어요. 지난 이야기를 쓰기보단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습니다.”

◆각색과 저작권에 대한 생각

“영화 퇴마록은 악연이었죠. 촬영도 편집도 내 동의 없이 못하게 계약했는데, 감독은 이건 자기 영화라는 거예요. 한 콘티 오려가고는 연락도 없더니 갑자기 시사회를 한대요.”

이우혁은 한국은 원작자에 대한 대접이 엉망이고, 원작자들은 너무 관대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향후 자신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영상물을 내놓을 계획을 갖고 있다.

“매체가 다르니까 당연히 고쳐야죠. 하지만 코드가 상충되면 원작자 말을 들어야 되는데, 한국은 원작자를 제쳐두고 자칭 전문인들이 알아서 해버려요. 들어보고 ‘재미있는데요? 이제 우리에게 맡기세요.’하는 식이죠.”

이우혁은 퇴마록을 게임화한 경험도 있다. 텍스트 게임인 퇴마요새는 스스로 퀘스트도 짜고, 급할 때는 프로그래밍까지 할 정도로 애정을 다한 끝에 성공했다. 반면 온라인 퇴마록은 클로즈베타(비공개 서비스) 한 달을 남기고 책임자가 잠적하면서 악몽으로 남았다.

“1년 넘게 공들인 게 엎어지고 나니까 사람을 못 믿게 됐습니다. 신이 ‘넌 그냥 글이나 써라’ 그러는 거 같더군요. 이게 저주인지 아니면 신의 칙명인지.”

이우혁은 자신의 드라마 구상이나 게임 기획안을 팔고 싶어한다. 책으로 쓰기엔 무리지만 버리기 아까워서 정리해둔 간단한 시놉시스가 스무 개가 넘는다고 했다.

“수입에서 얼마 떼는 걸로 하고 기획안 자체는 돈도 안 받고 넘길 수 있어요. 물론 내가 쉽게 써낸다고 해서 기획이 싸구려인 건 아니죠. 보면 아마 반할 겁니다.”

◆작년 7월, 그리고 삶 이야기

이우혁은 작년 7~8월 사이에 흩어져있던 머릿속이 갑자기 와르르 정리되었다고 한다. 감히 ‘대오각성’이라 표현하고 싶단다. 그때 이후로는 완성된 세계관에서 쏟아져 나오는 구상을 정리하기도 벅차다. 그런 그에게 작가로서의 삶을 물었다.

“나도 멋진 남편, 좋은 아빠이고 싶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잖아요. 일주일간 집에도 안 가고 잠도 안 자다 보면, 오히려 집에 있는 게 부자연스러울 정도가 됩니다. 생활리듬이 엉망진창이죠. 머리만 살아있으면 되니까 몸 관리도 안 해요. 한때 취미였던 등산을 할 마음의 여유도 없고요. 글쓰기는 고통의 연속입니다. 피를 토하고 찍어서 쓰는 기분이에요.”

이우혁이 다른 환상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지 궁금했다. 가령 ‘드래곤 라자’의 이영도는 어떨까? ‘반지의 제왕’의 톨킨은?

“판타지의 톨킨과 SF의 아시모프는 전설이죠. 동종소설은 고전 빼고는 읽지 않습니다. 융세록이 톨킨의 실마릴리온 같은 작품이 되었으면 해요. 이영도씨 작품은 초반부만 조금 읽어봤는데, 연구를 많이 하는 분이더군요.”

작업실에는 다종다양한 물건들이 쌓여있다고 한다. 이우혁은 한때 ‘가장 합리적인 기계’인 총 수집도 해봤고, 레진 모형에 몰두하기도 했다. 하지만 취미가 일정한 선을 넘어서면서 일로 느껴질 때는 즉시 그만둔다.

“프라모델은 조립만 하면 되지만 레진은 많은 기술이 필요합니다. 여자 인형 만들다가 오해도 많이 받았죠. 이제 레진에서는 손을 뗐어요. 다만 모델링의 종착점인 목범선은 도전해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네요.”

이우혁은 클래식에 미쳐있을 때의 추억인 ‘바스티앙과 바스티엔느’는 프로필에서 이제 그만 빼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혼자서 악보 작사 대본 연출 조연 무대장치 미술까지 맡아서 했었던 만큼 애정은 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자신의 프로필이 퇴마록, 왜란종결자, 파이로매니악, 치우천왕기로 채워지길 원한다. 그리고 그 뒤에 쓰여지게 될 이름도 셀 수 없이 많다.

“제게 있어 ‘일’이란 오직 글쓰기뿐입니다. 이것만은 해도 해도 질리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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