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만 첼로 놔도 굳은살 사라져 다시 아파"

조선일보
  • 김성현 기자
    입력 2009.03.27 02:37

    올해로 데뷔 40년… 첼리스트 정명화

    첼리스트 정명화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먼저 배웠지만 좀처럼 취미를 붙이지 못했다. 그러다 만 11세 때 첼로를 잡고선“첫눈에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CMI코리아 제공
    첼리스트 정명화(65)에게 1969년은 잊을 수 없는 해다. 그해 여름 미국 디트로이트 심포니와 야외축제 협연으로 세계무대에 데뷔했다. 하지만 막상 연주 당일에 오후 6시까지 종일 비가 쏟아졌다. 페스티벌에 모여든 5000여명의 관객도, 악기를 들고 근처 호텔에서 기다리던 정명화도 속으로는 연주를 포기했다.

    그칠 줄 모르던 비는 연주회 불과 30분 전에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정명화는 "활 털이 축 늘어질 정도로 무대에 습기가 가득해서 차이콥스키를 연주하던 내내 애를 먹었다. 역시 음악가는 연주 잘한 날보다는 고생 많이 한 날을 뚜렷이 기억한다"며 웃었다.

    그해 정명화는 동생 정경화(바이올린)·정명훈(피아노)과 '정 트리오'로 미국 백악관에서도 함께 연주했다. "그때 저와 경화는 20대였고, 명훈이는 16세였죠. 연주가 끝나자 닉슨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서 격의 없이 반갑게 맞아준 것만 기억납니다." 정명화는 그해 전설적인 명(名)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의 페스티벌에도 참가하며 이름을 세계에 알려나갔다.

    올해로 세계 데뷔 40년을 맞은 정명화가 자축(自祝) 무대를 마련했다. 다음 달 2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동료 교수인 피아니스트 김대진과 '40주년 기념 음악회'를 갖는다.
    정명화는 세계무대 데뷔 이후에도 1971년 제네바 콩쿠르 1위 입상부터 베를린·런던 공연까지 활동 반경을 차츰 넓혀갔다. 하지만 위기도 있었다. "20년간 쉬지 않고 연주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 옆으로 걷는 것만 같았죠. 딱 1주일 독하게 마음먹고 첼로를 손에 잡지 않았어요. 아이들도 '엄마 첼로 하라'고 난리였지만, 나부터 좀이 쑤셔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현악(絃樂) 연주자들은 손가락과 현이 맞닿는 곳에 어김없이 굳은살이 박인다. 하지만 정명화는 특이하게 그 굳은살이 체질상 두껍지 않다.

    "그 덕분에 손이 현에 닿는 감촉이 부드러워지죠. 하지만 이틀만 연습을 쉬어도 굳은살이 사라지고 다시 아파요. 지금도 휴가나 여행을 떠나도 좌석 한 자리를 차지하는 첼로는 꼭 갖고 다녀요. 아프지 않기 위해서라도 연습을 멈출 수 없는 거죠."

    '국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국민 지휘자' 정명훈의 언니이자 누나로 사는 스트레스는 혹시 없었을까. "왜 부담이 없었겠어요. 동생 경화야 너무나 잘하지만 트리오로 활동하다 보면, 실내악 요청만 들어오고 막상 독주자 경력을 다시 쌓기가 쉽지 않아요." 그는 동료든 가족이든 "시기하지 않아야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잃지 않는다"는 어머니 이원숙씨의 말을 가슴에 새긴다고 했다. 지난 40년간 첼로가 어떤 의미였는지 묻자, 그는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내 목소리"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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