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견병·쓰쓰가무시증… 야생동물의 반격

조선일보
  • 김진명 기자
    입력 2009.03.27 02:42 | 수정 2009.03.27 07:20

    온난화와 생태계 변화로 동물·곤충 질병 급증 "인력·예산 턱없이 부족"

    '434 대 6057' 일본과 한국에서 작년 쓰쓰가무시증(진드기 티푸스)에 걸렸다고 신고한 환자 숫자다. 인구 1억2700만명의 일본엔 환자가 434명뿐인데, 인구 4800만명의 한국엔 6057명이나 된다.

    동물의 광견병(狂犬病)을 예로 들어도 상황은 '0 대 397'로 비슷하다. 일본에선 1957년을 끝으로 광견병이 사라졌지만, 한국에선 1993~2008년 397건의 동물 광견병이 발생했다. 사람이 광견병 걸린 동물에게 물려 생기는 공수병의 경우, 일본은 외국에서 걸린 사람이 3명 있었을 뿐이지만 한국엔 국내에서 걸려 사망한 사람만 6명이다.

    위도와 환경이 비교적 비슷한 두 나라의 질병 발생 빈도가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전문가들은 그 변수로 야생동물·곤충 관리 차이를 꼽는다.
    서울대 수의대 야생동물의학실 관계자가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에서 고체 사료 안에 든 광견병 예방약을 살포하고 있다./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질병관리의 변수-야생동물·곤충

    서울대 수의대 야생동물의학실은 지난 9~13일 북한산 등을 누비며 고체사료 안에 광견병 예방약이 들어 있는 '미끼예방약'(bait vaccine)을 살포했다. 동물들이 먹이로 알고 씹으면 액체 백신이 흘러나오는 약인데, 서울시가 올봄 2만5000개를 사들여 강북 산악지역과 양재천 일대에 뿌려달라고 의뢰한 것이다. 1개 수입가가 2820원이나 하는 미끼예방약을 야외에 뿌리는 건 야생동물, 특히 너구리에 의한 광견병을 막기 위해서다.

    1985~1992년 광견병은 국내에서 사라진 듯 보였다. 하지만 1993년 강원도 철원에서 광견병 걸린 개가 다시 발견된 뒤 휴전선 인근을 따라 퍼졌고 2006년 서울까지 남하했다. 전문가들은 광견병 바이러스의 유전자형으로 볼 때, 북한에서 너구리 같은 야생동물이 넘어와 병을 퍼뜨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광견병이라고 하면 '개'만 떠올리지만 사실 변수는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야생에 있었던 것이다.

    최근 5년 동안 급증한 쓰쓰가무시증의 원인도 전문가들은 야생에서 찾는다. 주로 들쥐에 붙어사는 진드기 유충이 사람을 물 때 감염되는 쓰쓰가무시증은 열·피부 발진이 나고 기관지염·수막염 등의 증상을 일으키며, 때론 환자가 사망한다. 2002·2003년엔 국내에서 각각 1919건과 1415건밖에 보고되지 않았지만 2004년 4698건, 2005년 6780건으로 급증한 뒤 이후 매년 6000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쓰쓰가무시증 진단기술이 발전해 보고 건수가 늘었고, 온난화·친환경 농업 영향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수의학계에선 "털진드기나 털진드기를 데리고 다니는 들쥐·들새·들짐승의 생태에 변화가 있었는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등줄쥐의 배설물로 전염되는 '신증후군출혈열(유행성출혈열)'이 2001년 323건에서 2007년 450건까지 늘어난 것도 그런 징후의 하나라고 한다.

    전담기관 없고 담당 수의사는 1명

    야생동물·곤충에서 비롯되는 질병은 언제 어디서 '대형 사고'가 날지 모른다.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 많은 사망자를 낸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는 모기와 조류(鳥類)의 전유물로 생각됐지만, 1999년 뉴욕에서 사람이 감염된 뒤 금세 대륙을 휩쓸었다. 2002~2003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2003년 국내에서 연간 직접방역비만 1500억원씩을 쏟아 붓게 만든 조류인플루엔자(AI)도 모두 야생동물로부터 가축과 인간에게 전염되는 질병이었다.

    문제는 야생동물·곤충이 질병 관리의 중요한 부분인데도 연구·예방에 배정된 인력·예산이 턱없이 적다는 데 있다. '인간―가축―야생동물·곤충'이란 질병의 삼각구도에서 인간은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질병관리본부가, 가축은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관리를 맡고 있다. 하지만 야생동물·곤충의 질병을 전담하는 기관은 없다. 야생동물 관리는 환경부 소관이지만 질병을 연구·관리하는 기능은 미미한 탓이다.

    환경부에서 야생동물 질병 연구는 산하기관인 국립환경과학원의 바이오안전연구과가 맡고 있으나, 야생동물 전담 부서가 아니라서 담당자는 2명에 불과하다.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수의사는 단 1명이다. 혼자서 전국 야생동물의 질병을 떠맡아야 할 판인 것이다.

    전문 인력·연구 예산 배정 시급해

    물론 인간·가축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야생동물·곤충에 대해서는 질병관리본부와 수의과학검역원도 관리·연구를 한다. 두 기관이 합동으로 구성한 '인수공통전염병 대책위원회'도 있다. 하지만 여기도 인력·예산이 모자라는 것은 마찬가지다.

    질병관리본부엔 쥐·모기·진드기 따위에 대한 연구를 전담하는 '질병매개곤충팀'이 있다. 전국을 다니며 대상 동물·곤충을 채집해 실태를 조사하는데, 정규직 팀원이 5명에 불과하다. 일본뇌염·말라리아·쓰쓰가무시증을 일으키는 모기·진드기만 연구하기에도 벅찬 숫자다. 외부에 연구를 맡긴대도 연간 3억8000만원쯤의 예산으로 수많은 동물·곤충을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의과학검역원엔 수의사·전문인력이 많지만 구제역·AI처럼 당장 가축을 위협하는 질병에 대응하기 바빠 야생동물·곤충에 손댈 여력이 없다.

    광견병 미끼예방약만 해도 살포를 각 시·군에 맡겨놓아 통합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처럼 외부 전문가에 의뢰해 GPS로 위치를 기록하는 곳도 있지만, 군부대·민간단체에 살포를 부탁하는 시·군도 많다.

    수의과학검역원에 단 1명뿐인 광견병 담당자가 현장에 나갈 수 없어 엉뚱한 데 약을 뿌려놓아도 관리할 방법이 없다. 2007년 예방 효과에 대해 전문적 추적 연구를 시작했지만, 예산이 끊겨 1년 만에 중단됐다. 너구리에 대한 조사도 잘 안 되는 상태라 박쥐·유기견 같은 '잠재적 위험요소'엔 손도 못 댄다.

    서울대 수의대 신남식 교수는 "외국과 교류가 늘고 버려진 개와 고양이도 많아져 야생동물·곤충에 대한 연구와 관리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어디서 방역의 '구멍'이 날지 모르는 게 야생동물·곤충 분야인 걸 우리도 알지만, 인력·예산을 더 주지 않는 한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대 수의대 야생동물의학실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을 돌아다니며 고체 사료 안에 든 광견병 예방약을 살포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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