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TV 셋톱박스 업체인 셀런과 소프트웨어 업체 인프라웨어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상대방 회사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함께 개발한 IPTV 제품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기 위해 실무진들이 수시로 오가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두 회사는 손을 잡고 유럽 시장에 공동으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셀런이 만든 IPTV 셋톱박스에다 인프라웨어가 개발한 IPTV 이용 프로그램을 깔아 포르투갈의 IT제품 유통업체에 590억원 상당 규모의 계약을 맺은 것.

김영민 셀런 대표는 "유럽에 맞는 셋톱박스와 여기에 탑재될 프로그램 연구·개발을 함께 진행한 결과 까다로운 바이어의 요구를 맞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품질에 만족한 포르투갈 유통업체는 이달 초 335억원어치를 추가 주문했다.

두 회사가 수출 시장 공동 공략

경기 침체로 위기를 맞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합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단순히 원자재를 함께 구매하거나 생산 라인을 같이 쓰는 단계에서 나아가 수출 시장을 개척하고 제품을 공동 연구·개발하는 등 협력 분야가 확대되고 있다.

휴대용 버너 제조회사 코베아와 부탄가스 제조업체 대륙제관은 각자 제품을 '세트 상품'으로 묶어 미국·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등 10여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올 들어 우크라이나 시장도 뚫었다. 두 회사의 세트 상품은 지난해 미국에서 102만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 실적은 그보다 15% 증가한 117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플라스틱 밀폐용기 업체 락앤락과 도자기업체 젠한국은 몸체는 도자기, 뚜껑 부분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도자기 밀폐용기 '젠앤락'을 작년 8월 함께 내놓았다. 락앤락 관계자는 "보통 플라스틱 밀폐용기보다 값이 3~4배 비싼데다, 백화점과 직영매장에서만 팔고 있지만 출시 6개월 만에 5만개가 팔리는 등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24일 IPTV 셋톱박스 업체 셀런의 서울 송파구 가락동 본사에서 이 회사 직원들과 소프트웨어 회사 인프라웨어 직원들이 함께 노트북으로 자료를 보며 셋톱박스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두 회사는 힘을 합쳐 유럽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개별 작업 때보다 개발 시간 3배 빨라져

중소기업들이 힘을 합칠 경우 가장 큰 효과는 비용 절감이다.

LED 조명 기기를 만드는 씨씨티라이팅은 구미 산업단지 내 3개 중소기업이 지분을 출자해 만든 회사다. LED 조명을 만드는 데 필요한 조명기술과 전자회로, 외부 구조물 분야 업체가 힘을 합친 것. 씨씨티라이팅은 작년 11월 다른 LED 가로등에 비해 가격이 3분의 1 수준인 LED 가로등을 내놓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류성환 사장은 "올해 100억원 정도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며 "유럽 수출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 사장은 "각자 전문 분야의 회사가 모여 있어 문제점을 곧바로 해결할 수 있어 비용이 30% 넘게 줄고, 개발 기간은 3배 이상 빨라졌다"고 말했다.

혼자 힘으로는 신제품을 만들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블루오션(미개척 시장) 개척으로 새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손을 잡는 경우도 많다.

사무용 가구 회사인 코아스웰은 지문인식보안 전문회사 케이코하이텍과 공동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열쇠 대신 지문 인식 시스템으로 잠금장치를 단 사무 가구를 만들고 있는 것. 노형우 코아스웰 마케팅기획실장은 "올해 안으로 제품을 출시해 100억원 매출이 목표이며, 내년에는 200억원 이상 매출을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연성회로기판 업체 하이퍼플렉스와 섬유 업체 영도벨벳은 LCD 공정 중 액정 방향을 일정하게 조절하는 공정에 쓰이는 섬유를 개발, 출시를 앞두고 있다. 영도벨벳이 원단 개발을, 하이퍼플렉스는 절단·검사 공정을 맡았다.

이성열 영도벨벳 전무는 "그동안 일본 기업이 독점하던 분야였는데 두 회사가 힘을 합쳐 제품을 만들었다"며 "올해 200억~300억원 정도 매출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혁신클러스터(대학·기업·연구소가 어우러진 산업집적단지)에서 중소기업끼리 협력하는 사례도 2007년 17건에서 지난해 27건으로 늘었다.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은 "중소기업들이 세계시장 개척 등을 위해 전문성을 키우는 동시에 다른 회사와 역할 분담을 통해 시너지를 내는 게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