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작년 12월 박연차 리스트 수사 관련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수사를 하다 보면 누군가가 박 회장을 봐달라고 민원을 할 수도 있는데 그에 개의치 말고 수사하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이 당시에 이미 여권 핵심부가 관련됐을 가능성을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여권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여당 내 주류 의원들 말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작년 12월 박연차 회장이 구속될 당시 사정(司正) 담당 고위 관계자로부터 수사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이 수사를 하다 보면 누군가가 '박연차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는 등의 민원을 하면서 봐달라고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며 "그 사람이 (수사기관 입장에서) 아무리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개의치 말고 수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12월 29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이 정부는 도덕적 약점 없이 출범한 만큼 법 집행을 엄정히 하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최근 '박연차 리스트' 수사가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주류 의원들 사이에서 돌던 말이다. 당시에 이 말을 전했던 한 의원은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라며 "대통령의 그 말이 주류 진영에 전해지면서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구나' 하는 생각들을 갖게 됐던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25일 "대통령이 대면(對面)보고에서, 그것도 석달 전에 한 이야기라면 당사자가 아닌 이상 지금은 정확히 기억할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성역 없이 수사하라는 대통령 의지는 분명했고 지금도 그렇다. (정치권의) 도덕적 기반을 다시 세우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누구일까
여권 주류 내부에선 대통령이 "누군가가 민원을 하더라도…"라고 말한 그 '누군가'가 누구냐에 대해서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우선 "특정한 인물을 염두에 둔 게 아니라 원칙론을 말한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있다. 하지만 당시는 이미 국세청이 박 회장에 대한 정밀세무조사를 마치고 검찰 수사로 박 회장이 구속되던 무렵이었다. 그래서 여권에선 '누군가'는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쉽게 거론되는 인물로는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있다. 주류측 한 재선 의원은 "추 전 비서관은 이미 당시에 노건평씨와 접촉하고 여기저기 민원을 하고 다녔다"며 "그런 유의 '민원'을 말한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여권 주류 일각에선 '제3의 인물'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한 안국포럼출신 의원은 "전체적인 사건 흐름으로 볼 때 거물급 여권 인사가 개입됐을 수 있다고 보고, '어떤 실세가 민원을 하더라도'라는 의미로 한 말 아닌가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