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FTA의 틀 깨는 건 미국에도 손해되는 일

      입력 : 2009.03.10 23:04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후보자는 9일(현지시각)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한미 FTA는 공정하지 않으며 이 문제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한미 FTA에서) 물러서겠다"며 "현재 상태로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무역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우려하는 많은 미국인을 단순히 보호무역주의자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도 했다.

      한미 FTA에 대한 오바마 정부 내 기류가 부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 "한미 FTA는 문제가 많은 협정"이라고 했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지난 1월 인준청문회에서 "한미 FTA는 자동차 분야 등에서 공정한 무역조건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다 해도 한미 FTA의 미국측 협상창구인 USTR 대표 후보자가 취임도 하기 전에 "한미 FTA에서 물러서겠다"고 하는 것은 매우 잘못됐고 부적절하다. 상대방인 한국과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한국이 무조건 양보하라고 선전포고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전임 부시 대통령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규제하는 국제협약 '교토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부시가 그의 전임자 클린턴 대통령이 서명한 국제협약을 무시해 미국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렸다는 논리였다. 한미 FTA도 14개월 넘는 협상 끝에 2007년 4월 타결됐고 현재 두 나라 의회 비준절차를 남겨 놓고 있다. 그런데 세계 유일 초강국 미국에서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미 체결한 국가 간 협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는 앞으로 어느 나라가 미국을 믿을 수 있겠는가.

      오바마 정부가 이러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자동차산업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조차 최근 "GM은 파산신청을 하는 게 최상"이라고 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도 "FTA 반대론자들이 자동차시장 불균형을 거론하지만 한국 업체들이 미국 회사들보다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차를 만든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자동차업계가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난 근본 원인을 놓아둔 채 한미 FTA를 엉뚱한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은 정직하지 않은 일이다.

      대한민국은 한미 FTA 때문에 정권이 흔들리고 나라가 두 동강 날 듯한 위기를 겪었다.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작년 봄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질 수도 있다. 한미 FTA는 서로가 불만도 있고 만족하는 대목도 있는 선에서 어렵게 타결된 협정이다. 이것을 다시 협상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어렵게 맞춰놓은 불안한 균형이 무너져 자동차뿐 아니라 다른 여러 분야에서도 재협상 요구가 봇물 터지듯 나올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자동차 분야 양보를 얻어낸다면 거꾸로 한국에는 무엇을 양보할 것인가. 한미 FTA의 틀을 깨면 미국도 국제 신뢰나 교역이란 측면에서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양국 정부는 이른 시일 안에 한미 FTA에 관한 서로의 입장을 점검하면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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