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닭죽 끓이는 마을' 남한산성 브랜드 됐네

    입력 : 2009.03.06 03:13 | 수정 : 2009.04.14 15:36

    30년 넘은 가게들 즐비 재료 경쟁 치열하지만
    새 비법 나오면 공유 닭죽캔까지 개발 성공

    "이 마을에선 닭죽을 눈 감고도 만들어요."

    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 남한산성 등산로 입구 닭죽마을에서 만난 '초원의 집' 주인 이애숙(여·57)씨는 이곳을 이렇게 소개했다. 30년 이상 된 집이 수두룩하다 보니 닭죽(닭도가니탕)만큼은 자신 있다는 뜻이다. 이씨 역시 이 마을에서 30년 동안 닭죽집을 운영하고 있다. 기와지붕을 얹은 2층 건물들이 양편에 늘어선 닭죽집 간판마다 수십년 이력이 담겨 있다. '초가집'이라는 닭죽집은 '닭죽 만들기 30년', '전주가든'은 '36년 된 집'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닭죽마을에 모여 있는 닭죽집은 22곳. 이 마을 밖의 분산된 닭죽집까지 더하면 총 38곳의 닭죽집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남한산성엔 커다란 솥단지에 마늘만 듬뿍 넣은 닭백숙, 또는 대추와 인삼이 단출하게 들어간 삼계탕 정도만 있었다. 이게 세월이 지나며 진화를 거듭해 닭죽이 됐다. 닭도가니탕이라고도 불리는 닭죽은 닭·마늘·인삼·대추·밤 등을 찹쌀밥과 함께 질그릇(도가니)에 넣고 푹 끓여내 죽같이 만들어주는 이 마을만의 음식으로, 일부 음식점은 찹쌀밥을 미리 넣지 않고 닭을 다 먹은 뒤 남은 국물에 넣어 죽을 쑤어주기도 한다.

    닭죽집들이 모여들자 1998년 성남시가 등산로 입구 2㎞ 남짓한 곳에 '남한산성 닭죽 민속마을'을 조성, 명소로 만들었다.
    5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남한산성 닭죽 민속마을’의 음식점‘사랑방’주방에서 신예숙(47·오른쪽) 사장이 이웃 음식점‘노다지’의 윤석녀(66) 사장과 함께 닭을 삶아 건져내며 닭죽을 요리 비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재준 기자

    성수기 땐 하루 6000여명 찾아

    이 마을의 닭죽은 성남과 남한산성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성남시 조사에 따르면, 봄과 가을 성수기엔 하루 6000여명이 올 정도로 성황이다. 성수기 하루 매출액은 6400여만원에 이른다. 손님 중 성남 주민은 46%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서울과 경기도 등 다른 지역 주민이다. 이 마을 닭 맛이 소문난 덕이다. 성남시 심희철 보건위생과장은 "남한산성 닭죽이 전국적 브랜드를 얻게 되면 매년 손님이 20% 이상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남한산성 닭죽이 유명세를 타다 보니 이를 가공한 닭죽캔도 인기다. 성남시가 2007년 9월 한국식품연구개발원에 의뢰해 만들어, 현재 동원F&B에 위탁해 생산하는 이 닭죽캔은 남한산성 닭죽마을의 조리법을 그대로 담았다. 하나에 2600원으로, 작년 11월 28일부터 지난달 말까지 성남 분당구 서현동 AK플라자(옛 삼성플라자)에서 시험 판매해 총 6071개를 팔았다. 이 닭죽캔의 판매 수익 대부분은 성남시가 식품진흥기금으로 만들어 닭죽마을 정비 등에 쓴다. 성남시는 닭죽캔이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면 오는 10월 본격 생산체제를 갖춰 전국 대형마트·백화점·수퍼에 공급하기로 했다.

    대를 잇는 닭죽 외길 인생

    전국적 명소가 된 남한산성 닭죽 마을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수십년 닭죽 외길인생을 걸어온 닭죽마을 사람들만의 비결이 있었다.

    '노다지' 윤석녀(여·66)씨는 1975년부터 남한산성 계곡에서 닭죽을 팔기 시작해 올해 34년이 됐다. 윤씨는 고령이지만 닭죽만큼은 손수 만든다. 그는 "손에 집히는 감에 따라 재료와 양념을 넣는데 이 감이 맛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수십년 해온 닭죽집을 대를 이어 물려줄 생각이다. 8년 전부터 셋째 아들 유진(39)씨와 며느리 김정숙(33)씨가 같이 일을 하고 있다. 유씨는 국민대 법학과 2학년을 다니다 군 제대 후 어머니의 가업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옥진(여·69)씨가 1974년부터 20여년 홀로 운영했던 '장마담집'은 아들 유창호(43)씨와 며느리 이말순(43)씨가 물려받아 올해로 15년이 됐다. 며느리 이씨는 "시어머니에게서 10년을 배우고 나니 진한 닭육수의 구수한 맛을 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식당의 이름이 '이마담'이 아닌 '장마담'인 것은 고집스러운 장인(匠人)의 느낌을 주기 위해 장(匠)자를 넣었기 때문이라 한다.

    경쟁이 최고의 닭죽 만들어

    저마다 닭 요리만큼은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수십개 닭죽집들이 같은 음식을 팔다 보니 경쟁은 치열하다. 이 경쟁이 훌륭한 닭죽을 만들어냈다.

    '맛따라길따라' 사명순(여·62)씨는 닭죽을 위해 한약재 관련 책을 읽고, 한약재 도매상에게 물어 가며 한약재를 공부한다. 사씨는 한약재인 황기 3~4뿌리를 넣어 닭 비린내를 없앴다. 또 닭죽에 녹두를 넣어 구수한 맛을 내는데, 이 역시 그만의 비결이다.

    닭죽집을 한 지 30년 된 '대청마루' 장정임(여·65)씨는 닭도가니탕에 오가피를 넣는다. 오가피가 들어간 그의 닭도가니탕은 느끼한 맛이 없고 개운하고 시원한 맛을 낸다. 장씨는 전북 부안에 사는 동생 장형하(57)씨가 산에서 캐온 오가피만 사용한다.

    '사랑방' 신예숙(47·여)씨의 노력도 뒤지지 않는다. 신씨는 인삼은 충남 금산에서, 대추는 경북 경산에서, 밤은 충남 공주에서, 찹쌀은 충남 논산과 경기 여주에서 매주 택배로 받는다. 신씨는 "수십개 닭죽집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좋은 재료에 대한 욕심을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협력이 공동의 브랜드 만들어

    하지만 경쟁만 있었다면 오늘날의 남한산성 닭죽은 없었을지 모른다. 이곳 닭죽집 주인들은 좋은 맛을 내는 방법을 알아내면 이를 이웃에 알려주는 상조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 덕에 '남한산성 닭죽촌'이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이 마을을 대표하는 닭죽도 1986년 한 닭집에서 먼저 개발해 다른 집들로 전파가 됐다.

    '랑랑집' 임점순(여·58)씨는 이 마을에서 닭죽집을 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엔 화력이 센 식당용 가스불을 켜는 것조차 서툴렀지만 지금은 30년 된 집 못지않은 닭죽을 만들어낸다. 임씨는 물의 양, 죽에 들어가는 찹쌀을 차지게 하는 방법까지 다른 닭죽집들에게서 배웠다.

    '일번지' 이우종(67·닭죽마을 번영회장)씨는 "마을 전체가 맛있는 닭죽을 만들어야 '남한산성 닭죽'이라는 브랜드가 오래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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