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시각] 한·미 정치 사이클과 북한의 도발 패턴

조선일보
  • 크리스티안 위튼 아시아자문회의 선임자문관 前 미국무부 북한인권담당 차관보
  • 정리=김시현 기자
    입력 2009.03.05 22:59 | 수정 2009.03.11 10:01

    크리스티안 위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북한은 미사일 발사 준비를 계속하고 있었다. 알려진 대로 시험 발사가 준비되고 있는 대포동 2호 미사일은 이론적으로 북아시아의 어느 도시나 군사기지에도 핵탄두를 보낼 수 있으며, 멀리는 북아메리카의 일부 지역에까지 보낼 수도 있다.

    이것은 최근 몇 주간에 일어난 명백한 호전적인 조짐들과 연관돼 있다. 특히, 북한은 얼마 전 이명박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려는 열정이 부족하다면서 이것은 "통제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군사적 충돌과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또한 한반도의 화합이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이 문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냉정하게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 정권은 지속적으로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자신들의 생존과 연관된 외국의 원조를 받기를 원하면서 성질을 돋우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마지막 미사일 발사는 지난 2006년 6월이다. 그해 10월에는 핵무기 실험을 했다. 콜린 파월 당시 미 국무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남한을 방문한 2003년에는 단거리 미사일이 시험 발사됐다. 그해 말 북한은 핵확산 금지조약에서 탈퇴했다.

    이보다 앞서 1998년 8월엔 일본을 향해 탄도 미사일을 쐈으며, 1993년에도 일본 근해에 유사한 운반체를 쏘았다. 같은 해 북한은 이미 핵확산 금지조약에서의 탈퇴를 무기로 국제사회를 위협했다.

    이 사례들은 한국과 미국의 정치적 사이클에 북한의 도발 패턴이 연관돼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선거뿐 아니라 지도자의 지지율 등락과도 관련이 있다.

    2006년의 사례는 부시 정권이 자신들의 유산을 부각시키려 할 때였고, 이라크 전쟁에서 밀리면서 국내 논쟁이 촉발되자 외교적 '승리'가 절실한 상황에서 온 것이다. 1998년의 교전은 북한의 기아구제를 위한 대량 원조와 2000년 김정일·김대중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은, 일련의 사태전개의 시작이었다.

    북한은 이제 이 방법을 다시 쓰려 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에 새 정부가 등장하고 이명박 정부가 국내의 도전을 받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회를 엿보고 있다.

    문제는 북한의 행운이 다했는지,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지도자가 어떻게 반응할지가 핵심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이 아시아를 그녀의 첫 번째 공식 방문지로 만든 것은 상징적 제스처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갈수록 많은 미국 분석가들이 미국에 아시아가 중요할 뿐 아니라, 아시아의 긍정적인 변화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외교를 사용할 더 큰 기회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클린턴 장관은 북한과 또 다른 획기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을 상대한 그녀의 전임자 4명은 증명 가능하고 강제력 있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모두 실패했다. 평양이 최근 성질을 부리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성숙한 어른이 하는 것처럼 반응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양보할 것 같지도 않은 핵 프로그램을 단념시키느라 북한을 지원하기보다는 핵개발과 핵확산 대응, 일본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장기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또 북한을 다양한 사안에 진지하게 협상에 응하도록 압박하는 방법을 구사해야 한다. 여기엔 핵문제뿐 아니라 인권이나 다른 안보문제들도 포함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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