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폭정의 전초기지'서 중동외교 핵심으로
김민구 기자 roadrunner@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조지 W 부시(Bush) 전 미국 대통령이 "폭정의 전초기지(outposts of tyranny)"라며 적대시했던 시리아를 중동 평화 외교의 핵심축으로 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Clinton) 미 국무장관은 3일 이스라엘 방문 중 기자회견에서 "시리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예비회담을 하기 위해 특사 2명을 시리아에 파견하겠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클린턴 장관은 전날 이집트의 휴양도시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재건을 위한 국제회의에서도 왈리드 무알렘(Muallem) 시리아 외무장관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고 짧은 대화를 나눴다.

시리아에 화해의 손짓하는 미국

미국이 시리아에 고위 외교 사절을 파견하는 것은 2005년 이후 처음이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5년 라피크 하리리(Hariri) 레바논 총리가 암살되자 그 배후로 시리아를 지목하고, 시리아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한 뒤 다시 파견하지 않았다.
곧 시리아를 방문할 미국 특사로 제프리 펠트먼(Feltman) 국무부 중동담당 차관보와 댄 샤피로(Shapiro)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고문이 내정됐다고 뉴욕타임스가 3일 보도했다. 펠트먼 차관보는 부시 행정부에서 레바논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해, 레바논의 이슬람 무장단체인 헤즈볼라와 시리아의 유착 관계 등 시리아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다.

펠트먼은 이미 지난주 워싱턴DC에서 이마드 무스타파(Mustafa) 미국 주재 시리아 대사를 만나 양국관계 개선 방안을 협의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무스타파 대사에게 "시리아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레바논 내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레바논 내정에 더 이상 간섭하지 않는다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가 보도했다. 무스타파 대사는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아주 건설적인 만남이었으며 조만간 다시 만날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중동 평화의 핵심축으로 부각

전임 부시 행정부는 '친(親)이란-반(反)이스라엘' 외교 노선을 걷는 시리아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군사적인 위협도 가했다. 미군은 지난해 10월 "시리아가 이라크에 외국인 테러리스트를 침투시키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시리아의 국경 마을을 폭격했다. 이스라엘도 2007년 9월 북한의 지원을 받은 핵 시설로 추정되는 시리아의 건물을 폭격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의 인식은 180도 다르다. 시리아를 포섭하면 시리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란과 하마스·헤즈볼라 등 이슬람 무장단체를 움직여 복잡하게 얽힌 중동 사태의 실타래를 풀 수 있다는 판단이다. 미국의 민간 정책연구소인 뉴아메리카재단의 아마자드 아탈라(Atallah) 연구원은 "오바마가 중동의 여러 위기를 단번에 해결하려는 것 같다"며 "시리아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강경 노선을 완화시키는 동시에 미국과 이란 간 대화를 진전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협상을 성사시키는 것보다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 평화 협정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아론 데이비드 밀러(Miller) 미 프린스턴대 우드로 윌슨 연구소 교수(정책학)는 "이스라엘―시리아 평화 협정이 중동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평화"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일부 정치인들도 하마스를 상대하는 것보다 시리아와 대화하는 것이 더 쉽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4일 보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차기 총리로 유력한 베냐민 네타냐후(Ne tanyahu) 전 총리가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 전쟁 당시 점령한 시리아의 영토 '골란 고원'을 반환하는 협상에 반대하는 등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 클린턴 장관도 3일 "시리아와의 관계가 아직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며 섣부른 기대를 경계했다.
입력 : 2009.03.05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