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車)만 씽씽… 인도는 없네

입력 2009.03.04 03:24

93년만에 육지길 열린 소록도
한센인 환자·장애인, 휠체어 이용 위험천만

'한센인의 섬' 전남 고흥 소록도(小鹿島)의 12인승 봉고차가 3일 뭍에 있는 시장을 오가기 시작했다. 국립소록도병원에서 출발한 이 차는 이날 3차례 운행하며 한센병 환자(한센인) 10명을 육지로 날랐다. 시간은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배를 탔으면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해 40분이나 걸렸던 거리다. 소록도의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 이 봉고차는 앞으로 매일 4~5차례 운행한다. 가장 젊은 한센인 권창원(41)씨는 이날 뭍의 녹동시장에서 김치와 마른반찬을 구입했다. 그는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섬을 떠나 육지로 나갈 수 있게 됐다"며 밝게 웃었다.

바다에 외로이 떠 있던 소록도가 2일 낮 12시 육지와 연결됐다. 전남도가 지난 1월 완성한 '고흥군 도양읍 용정리~소록리(3.42㎞)' 27번 국도(1단계) 구간 중 소록도와 녹동항을 잇는 소록대교(1160m)가 임시 개통된 것이다. 소록도는 1916년 5월 조선총독부가 전국의 한센인을 강제 이주시켜 격리 수용한 곳으로, 1963년 이후에야 강제 수용 정책이 폐지됐다. 이런 역사적 애환이 서린 이 섬이 무려 93년 만에 육지와 연결된 것이다. 전체 면적 3.79㎢, 해안선 길이 12㎞의 이 섬에는 현재 620명의 한센인이 거주하고 있다.
전남 고흥 소록도와 녹동항을 잇는 소록대교. 2일 개통된 소록대교에는 인도가 없어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남도 제공
하지만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연륙교(連陸橋) 개통 이틀째인 3일 한센인들은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왕복 2차로로 만든 소록대교에 인도가 없어 이동시 안전 문제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현재 한센인 620명 중 거동이 불편한 1~2급 장애인은 514명. 여기에 평균 연령은 73세로 대부분 전동 휠체어에 의지해 이동하고 있다. 거주지에서 다리를 지나 읍내까지는 대략 4~5㎞여서 아예 다리 건너기를 포기하고 있다. 차량이 없는 한센인들은 불편하지만 원생자치회가 운영하는 봉고차를 탈 수밖에 없다.

김정행(70) 원생자치회장은 "약한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다리를 건너기는 힘들다"며 "육지와 연결돼 좋지만, 실제 우리 삶을 개선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록도와 뭍을 하루 40회 왕복했던 배(도양7호)도 다리가 놓이면서 운항을 중단했다. 1961년 운항을 시작한 지 4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150명 정원의 이 배는 1997년부터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는 한센인을 무료로 탑승시켰다. 이 배를 운항했던 ㈜도양해운 전승민(47) 사장은 "다리 개통으로 오히려 한센인의 이동이 더 불편하게 됐다"며 "주민들과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했는데 무척 섭섭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립소록도병원은 장애인들의 이동 편의를 위해 녹동항을 오가는 병원선을 매일 4~5차례 운항한다. 국립소록도병원은 "사실상 환자들이 인도가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며 "주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병원선 운항을 중단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BR>
전남도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박철원(47) 전남도 도로교통과 업무담당은 "소록대교 도로는 일상적인 국도 포장으로 인도를 개설할 의무가 없다"고 말했다.

소록대교의 정식 개통식은 오는 5월이다. 1560억원이 든 1단계 공사에 이어 '소록도~거금도(6.78㎞)' 구간(2단계)은 익산국토관리청이 2011년 말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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