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가수 김용, "저 이렇게 삽니다"

  • 조선닷컴
    입력 2009.02.28 10:40 | 수정 2009.02.28 13:29

    “목숨 걸고 탈북했는데 못할 일이 뭐가 있어?”

    귀순가수 김용
    지난 1991년 한국에 들어온 ‘귀순 가수’ 김용(49)씨. 가수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했던 그는 1996년 경기도 일산에 북한음식 전문점을 차렸다. 이후 파죽지세(破竹之勢) 사업가에서 수십억의 빚쟁이로 부침(浮沈)을 거듭한 그를 월간조선 3월호가 만나봤다.

    북한의 2·16(김정일의 생일이 2월 16일이다)예술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평양 영화 및 방송음악단과 평양 국립교향악단에서 가수로 활동했고, 한국에 들어온 뒤에도 가수로 활동했지만 사업은 쉽지 않았다. 경험이라고는 자강도 체육단 막내선수 시절 요리사 할아버지를 도우며 어깨 너머로 배운 것과 남한에서 방송리포터 일을 하면서 전국의 실향민들이 운영하는 북한음식점을 훑어본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양냉면’ 고유의 맛을 찾기 위해 전국의 간장이란 간장은 전부 사다가 육수를 내봤다. 실향민들로부터 조언도 수도 없이 들었다. 마침내 제대로 된 냉면 맛을 낼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할 즈음, 가게의 입소문도 나기 시작했고 사업의 규모도 커져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국내와 미국 뉴욕·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샌프란시스코와 일본 도쿄 등지에 모두 98개의 체인점을 열었고 ‘탈북 사업가 1호’란 별칭과 함께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이내 시련도 찾아왔다. 한국에 처음 들어와 믿고 의지했던 사람에게 수억원의 사기를 당했고, 믿고 도와줬던 탈북자들에게 돈을 떼이기도 했다. 무리한 사업 확장은 수십억원의 빚으로 돌아왔다.

    “그땐 제 능력은 생각도 않고, 雨後竹筍(우후죽순)으로 전국에 ‘모란각’ 체인점 98개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지역마다 맛이 다 달라 똑같은 맛을 낼 수가 없게 됐어요. 북한음식 맛은 금방 세수하고 나온 화장 안 한 여자 얼굴처럼 담백한데 여기는 맛이 맵고 짜고 각 지역 체인점마다 맛이 다 다른 겁니다. 주방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래야 장사가 된다는 거예요. 손님들 사이에서 ‘북한음식이 뭐 이래!’라는 비난이 들리기 시작했죠.”

    북한음식 고유의 맛을 낼 수 없게 되자 사업은 점차 기울었다. 수십억원의 빚을 지게 되면서 한때 모란각을 팔까 고민했지만 ‘농사꾼은 굶어 죽어도 種子(종자)를 베고 잔다’는 말처럼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한다. 그 뒤 컨설팅 회사에 자문해 체인점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 능력의 한계를 배운 거죠. IMF 때 대기업들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구조조정을 했듯 ‘모란각’이란 브랜드를 건지고, 북한음식의 산 증인으로 남기 위해 체인점을 줄였어요. 모란각을 만드는 데 3~4년 걸렸다면, 줄여나가는 데는 6~7년이 걸렸어요.”

    김용씨는 98개의 체인점 가운데 일산 본점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지점 등 2곳을 제외한 나머지 96개 체인점을 모두 정리하고, 평양냉면과 만두, 갈비찜, 불고기, 순대, 김치 등을 인터넷 쇼핑몰과 홈쇼핑 등에서 판매하는 ‘모란봉물산’을 운영하고 있다. 수십억원의 빚과 연체된 4억여 원의 세금도 모두 갚았다고 한다. 그는 “현재 CJ·롯데·현대·GS·농수산홈쇼핑 등 5개 홈쇼핑에서 냉면 판매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간 매출 규모를 묻자 “사업상 비밀”이라고 했다.“빨리 세금 내서 빚 갚아야죠”

    남한사회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후배 탈북자들에게 해줄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합니다. 김용이 냉면집으로 성공했다고 하니까 다들 좇아서 냉면집을 차리려고 하는데, 조급하게 욕심부리지 말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하지 않는 힘든 일을 멕시칸들이 했어요. 일본에선 조선인이 일본인들이 내다 버리는 소 내장을 주워다 팔아서 돈 벌었어요. 탈북자들은 왜 건설현장에 안 가고, 힘든 일 안 하려고 합니까. 실향민들은 맨발로 월남해서 잘살아 가는데 왜 우리가 고향 선배들 못 따라갑니까. 정부에서 안 도와준다고 불평할 게 아니라 남들이 하지 않는 힘든 일을 찾아서 땀 흘려 일해야 해요. ...... 부모 형제 남겨두고 목숨 걸고 왔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고, 못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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