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에이즈는 소년병 '피의 儀式'을 타고…

입력 2009.02.27 16:10 | 수정 2009.02.28 13:45

아이들 잡아간 반군들 칼로 팔목 그어 피 받아 서로 비비고 마시게하는 광란의 '血盟의식' 우간다를 에이즈의 땅으로

우간다, 아프리카 대륙 동쪽에 자리 잡아 아름다운 자연 풍광으로 한때 영국인들이 '여왕의 목걸이'로 불렀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내전(內戰)의 깊은 상흔으로 신음하고 있다. 수많은 청소년과 아동 에이즈(AIDS) 환자들도 바로 그런 현실 중 하나다. 3200만명의 인구 중에서 에이즈 감염 청소년과 아동의 숫자가 300만명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소년병 '피의 의식' 통해 에이즈 감염

2월 16일 우간다 중동부의 아무리아(Amuria) 지역을 찾았다. 학교 운동장은 뛰노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사이먼 오마체(Omace·16). 소년병으로 끌려갔던 그는 2003년 우기(雨期)의 어느 날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조셉 코니(Kony)가 이끄는 LRA(Lord's Resistance Army) 반군 세력은 조용했던 마을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닥치는 대로 죽이고 불 지르던 살육의 현장. 열 살 오마체는 손이 뒤로 묶인 채 죽음의 행진에 끌려가야 했다.

우간다 소로티 마을의 마이클과 조세핀 남매. 에이즈 감염으로 생명의 불이 언제 꺼질지 모르지만 미래의 변호사와 수학 선생님을 꿈꾼다. / 채성진 기자
반군에 대한 정부군의 폭격 과정에서 수많은 동네 친구들이 팔다리가 잘려 죽어나갔다. 외줄 로프를 잡고 늪지대를 지날 때 헤아릴 수 없는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곡괭이로 친구를 때려죽이라는 명령도 받았다. "친구를 죽였다" 고백하던 오마체는 머리를 감싸쥐며 눈물을 떨구었다.

당시 반군들은 '피의 의식'을 수시로 행했다. 줄을 세운 뒤 한명씩 칼로 손목을 그었고, 그 피를 한데 모아 섞었다. 피가 솟는 팔목을 서로 비비게 하는 혈맹(血盟) 의식도 자주 벌어졌다. 기름을 섞은 피를 소년병들에게 돌려 마시게 했다. 광란의 사교(邪敎) 집단이 따로 없었다. 반군들은 소년병의 몸에 상처가 생기면 모아둔 피를 발랐다. 피의 주술이 상처를 치료해 줄 것이라는 맹신(盲信)에 의한 것이었다. 이성이 사라진 그곳에는 피의 참극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소년병으로 끌려 다닌 2년여 기간은 오마체의 뇌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그의 몸에는 에이즈를 남겼다.

이곳에서 에이즈 청소년들을 돌보고 있는 정하희(56) 기아대책 봉사단원은 "가슴과 복부, 머리와 등에 주기적으로 통증이 찾아오며, 피부에 발진이 생기고 짓무르는 오마체의 상태는 에이즈 감염자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이라고 했다. 그는 "에이즈 감염 여부를 테스트하는 서비스를 받기 어렵고, 감염이 확인됐다고 해도 경제적 능력이 없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이곳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소년병 출신 제임스 에두푸(Edufu)의 인생은 더 참담했다. 반군에 납치됐다 1년여 만에 돌아온 집에는 10명의 가족 중 동생 하나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반군에 목숨을 잃고 에이즈로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것이다. 그 역시 에이즈 양성으로 확인됐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으면 해요. 그러면 저, 살 수 있겠죠?" 17세 소년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운명이다.

◆기약할 수 없는 미래… 그래도 꿈이 있다

열여덟 살 스텔라 로스(Ross)는 반군에 납치돼 성 노리개로 2년3개월을 보내야 했다. 반군 남성들에게 수시로 성폭행당한 악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역시 에이즈 감염이 의심되는 상태다.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고 귀와 코가 잘려나가고, 심지어는 인육(人肉)을 조각내 먹도록 강요당한 경험도 전했다. 함께 납치된 형제 네명의 생사는 아직도 모른다고 했다. 희망을 묻자, 그는 "에이즈에 걸리지 않은 남성과 결혼해 건강한 아이를 낳고 싶다"고 했다.

아무리아에서 60㎞ 정도 떨어진 소로티(Soroti) 마을. 마이클(Michael·13)과 조세핀(Josephine·9) 남매가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심각한 영양 부족에 시달린 탓인지 남매의 체구는 나이에 비해 턱없이 왜소했다. 10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아내와 마이클 남매에게 에이즈와 가난을 남기고 갔다. 여동생 조세핀의 팔 곳곳에는 짓무른 상처가 보였다. 끊임없이 상처 부위에 달라붙는 파리떼에도 무감각했다.

언제 생명을 마감할지 모르는 삶, 남매는 소중히 간직한 꿈을 말했다. "변호사가 되고 싶어요." 마이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동생은 "난 수학 선생님"이라고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얼마나 좋아요?" 밝게 웃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엄마는 "이 세상에 내가 의지할 수 없는 게 하나도 없다"면서 울먹였다.

◆"에이즈는 불치의 병이 아니다"

기아대책은 우간다에서 에이즈 아동을 돕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아이들의 교육과 건강을 지켜가기 위해 벌이는 '어린이 개발사업', 에이즈 아동에 대한 일대일 결연사업 등이 그것이다. 학비와 학용품을 지원하고, 주거 환경 개선사업도 펼친다. 영양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한 치료약을 복용하면 실명과 청력 상실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옥수수 가루를 곱게 갈아 만든 뽀쇼(posho)와 굵은 콩, 계란과 설탕을 지원한다.

정하희씨는 "에이즈에 감염된 청소년들은 면역력이 약해 감기나 말라리아 등에 걸리면 치명적"이라고 했다. "1단계로 셉트린(septrin)을 투약하고, 2단계로 치료제인 항레트로바이러스(ARVs) 제제를 씁니다.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생명을 잃는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는데…. 우간다 정부가 지원하는 약품은 턱없이 부족하고, 현장에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요."

이지인(30) 기아대책 봉사단원은 "한 달 5만원의 후원금이면 몇 년, 혹은 몇 개월 뒤 사라질지 모르는 생명을 지켜낼 수 있다"면서 "도움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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