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사천왕사(寺) 사천왕상(四天王像) 왜 4개가 아니라 3개일까

조선일보
  • 허윤희 기자
    입력 2009.02.27 03:18

    강우방 前경주박물관장
    "경주 김씨는 흉노 후예 북쪽 지킬 필요 없었다"

    지금은 터만 남은 경북 경주시 사천왕사(四天王寺)는 통일신라의 대표적 호국 사찰이었다. 문무왕이 당나라의 침공을 사전에 탐지하고 이 절을 지어 원력으로 당을 분쇄했다고 《삼국유사》에 전한다.

    일제시대 사천왕사 터를 발굴했더니 수호신의 부조상이 조각된 '녹유전(綠釉塼·녹색 유약을 입혀 구운 벽돌판)' 파편들이 나왔다. 통일신라의 조각승 양지(良志)가 만든 것으로 갑옷 차림에 화살·칼 등을 든 수호신들의 자태가 드러난 걸작품이다. 이 수호신 조각의 정체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 견해가 엇갈렸지만 수호신상의 정체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라는 통설이 유력했다.

    그런데 2006년부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사천왕사 터를 다시 발굴한 결과 녹유전상(像)이 3개만 확인돼 학계를 당혹시켰다. 사천왕상은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방위신(方位神)이어서 4개의 상이 한 세트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사천왕상이라면 왜 상은 3개뿐일까. 사천왕이 아닌 다른 수호신으로 봐야 하지는 않을까?
    경북 경주시 사천왕사 터에서 발굴된녹유전 사천왕상. 발굴된 파편들을 이어 붙인 것이다. 오른쪽은 강우방 전 국립 경주박물관장이 그린 복원도다. /강우방씨 제공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26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강연에서 "사천왕사의 사천왕상이 3개뿐인 이유를 문무왕 비석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이 조각들이 사천왕상이라고 주장해온 강씨는 "신상들의 차림새는 분명 사천왕인데 왜 상이 3개뿐인지 이해가 안됐는데,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했다.

    문무왕 비문에 쓰여 있는 신라 김씨 왕가의 계보에는 '투후(禾宅侯)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5행), '15대조 성한왕(星漢王)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내리고'(6행) 등의 문구가 나온다. 한서(漢書)에 의하면 투후는 흉노 휴도왕(休屠王)의 태자 김일제다. 한나라와 전쟁 과정에서 포로가 됐고 무제에 의해 '투후'로 임명됐다. 경주 김씨는 흉노의 후예라는 것이다. '성한왕'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로 추정된다.

    강씨는 "사천왕사의 사천왕상은 불법(佛法)의 수호신인 동시에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의 수호신"이라며 "문무왕이 북방에 위치한 훈 제국의 후예임을 비석에 천명했기 때문에 북방을 방위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사천왕상 중 북방에 맞서 국토를 수호하는 다문천상(多聞天像)은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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