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강탈당한 의궤도서, 되찾을 방법 없는가

조선일보
  • 최혜원 블루로터스 아트디렉터ㆍ'미술 쟁점-그림으로 비춰보는 우리시대' 저자
    입력 2009.02.26 02:54

    [명화로 보는 논술]외규장각 고문서 반환문제
    병인양요 때 297권의 의궤도서 약탈 테제베 선정 조건 반환 합의 후 번복

    〈도판〉“휘경원원소도감의궤(徽慶園園 所都監儀軌)”, 조선시대, 17세기, 국립중 앙 도서관 소장
    ■실패한 거래, 우리의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협상

    1993년 9월, 김영삼 대통령과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병인양요(丙寅洋擾, 1866년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으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사건) 당시 프랑스군이 탈취해 간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에 합의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그 당시 반환합의의 상징적인 의미로'휘경원원소도감의궤(徽慶園園所都監儀軌)' 한 권을 전달하고는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 동안 수 차례 정치적인 채널을 통해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협상을 해왔지만 협상결과는 '반환'에서 '영구대여'로, 영구대여에서 그에 상응하는 국내 고문서와 맞교환 한다는 등가교환원칙으로 마무리됐다. 이는 치욕적인 협상으로 약탈자의 소유권을 우리 스스로가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국내 여론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프랑스 군대는 병인양요 때 강화도에 침입해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던 191종 297권에 이르는 '의궤도서(儀軌圖書)'를 불법 약탈해갔다. 이 중 31종은 국내에도 없는 유일본으로 그 역사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 학계와 대다수 국민들은 불법으로 약탈해 간 우리의 문화재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즉각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측은 전시 약탈물로 인정하기에는 공소시효가 지나 프랑스문화재로 등록된 자국의 재산이라는 주장과, 국립도서관 소장 도서는 양도할 수 없다는 국내법 실정을 들며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1993년 미테랑 대통령이 외규장각 고문서를 한국에 반환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을 때 국립도서관 직원들은 도서관 문을 닫고 국가의 문화유산을 정치·외교적 상업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휘경원원소도감의궤'를 한국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고 온 국립도서관 여직원 두 명은 호텔방에서 도서를 끌어안고 울고불고 하면서 반환약속시간까지 돌려주지 않는 해프닝을 벌이고 프랑스로 돌아가서는 사표를 냈다고 한다.

    ■의궤도서(儀軌圖書)란?

    '의궤도서'는 조선왕조시대에 왕실 및 국가의 각종 행사에 대한 발의와 준비 과정, 의식 절차, 진행 내용, 행사 유공자 포상 등의 사실을 정리한 기록이다. 즉 왕실의 혼례나 장례, 궁궐 신축 등 각종 의식과 행사 내용을 자세히 기록한 책인 것이다. 파리 국립도서관 소재의 의궤도서들은 제작시기가 1630년(인조 8년)에서 1849년(현종 15년)에 걸친 것들로 조사됐다.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랜 의궤는 1600년(선조 33년)에 만들어진 것이며,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면서 종류도 많아지고 제작 수준도 뛰어난 것들이 많아졌다.

    의궤는 국왕, 왕비, 세자 등의 책봉, 왕실의 결혼, 역대 인물들의 지위를 높이는 절차인 추숭기안 존호 부여, 장례 절차, 능원의 조성 및 이장 때 만들어졌는데 주로 담당기구에서 사용한 등록을 기본 자료로 해 제작된다.

    행사를 거행하게 된 경위를 보여주는 각종 공문서의 내용을 비롯해 업무의 분장, 오고 간 공문서, 동원된 인원, 물자의 조달과 배정, 경비의 수입과 지출, 건물 및 기물의 설계와 공작, 담당 관리의 명단, 행사에 대한 기록화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그 중 '휘경원원소도감의궤'는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어머니인 수빈 박씨 무덤을 조성한 사항을 상세하게 기록한 의궤로 화려한 채색의 그림까지 곁들인 제작기술이 돋보이는 중요한 유산이다.

    ■프랑스의 이중성

    미테랑 대통령이 한국에 호의적으로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을 약속한 것은 사실 고도의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프랑스는 한국 고속철도 사업과 관련해 독일과 경쟁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테제베(TGV)를 선정해주는 조건으로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을 약속했다. 그러나 1995년 3월 테제베가 사업자로 최종 선정되자 프랑스 정치계와 문화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을 바꿔버렸다. 실속은 다 챙기고 손해는 하나도 없는 그들로서는 성공한 거래였다.

    프랑스는 외부 반출된 자국 문화재는 모든 법을 바꿔가면서까지 찾아오고, 일부 나라에 대해서는 문화재를 반환한 선례를 가지고 있다. 상대국을 봐가면서 협상을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2000년 10월 파리의 뤽상부르 미술관에서 독일 라우재단이 소장한 인상파 화가 폴 세잔느(Paul Cezanne, 1839~1906)의 그림이 전시됐다. 프랑스는 이 그림이 1941년 나치가 약탈해 간 그림이라며 압수해버렸다.

    민간단체인 라우재단은 1981년 경매를 통해 합법적으로 이 그림을 구입했다. 프랑스는 자국에서 전시회를 열게 해준 뒤, 그림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나의 것도 나의 것, 남의 것도 나의 것"이라는 자칭 '문화민족'으로서의 그들의 이중적 행동에 참으로 아연실색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협상 시기와 전략에 있어서 확실한 원칙을 세우지 못하고 미흡한 준비로 우왕좌왕한 우리의 과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대로 실패한 거래로 끝나는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다.
    ※더 생각해볼 거리

    ―우리가 프랑스로부터 '의궤도서'를 반환받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노력에 대해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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