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43]

조선일보
입력 2009.02.23 02:54

제4장 기다리는 사람, 떠나는 사람

청계동으로 돌아온 중근은 바로 큰사랑으로 갔다. 동천 밖으로 나가지 않을 때는 밤낮 없이 큰사랑에 나가 있던 아버지였으나, 그날따라 둘째아버지 안태진이 홀로 큰사랑을 지키고 있었다. 중근이 아버지가 있는 곳을 묻자 안태진이 어딘가 어둡게 들리는 목소리로 일러주었다.

"신천 관아에서 사람을 보내 찾는다 해서 방금 너희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그 말에 중근은 선 자리에서 큰사랑을 나와 집으로 갔다. 할아버지 안인수가 살던 큰집과 잇달아 짓다시피한 집이라 큰사랑에서 몇 발자국 안 돼 중근의 집으로 통하는 중문이 나왔다. 중문을 지나 사랑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아버지 안태훈의 높은 웃음 소리에 이어 찬바람 도는 목소리가 5월 한낮의 적막으로 가르고 중근의 귓속을 후벼 왔다.

"어씨(魚氏) 민씨(閔氏) 두 분의 쌀이 어찌 되었는지는 내가 알 바 아니오. 나는 다만 동학당의 진중에 있던 것을 뺏어온 것뿐이니 다시는 그런 무리한 말을 하지 마시오!"
일러스트 김지혁

목소리로 미루어 아버지는 치솟는 노기를 억누르고 있었다. 웬만한 사람이면 그런 안태훈의 목소리와 함께 쏘아보는 눈빛에 기가 죽을 만도 했으나 방안의 상대는 지지 않고 맞받았다.

"안 진사께서는 지금 어떤 분들과 맞서려 하고 계시는지 아십니까? 어윤중(魚允中) 대감은 시임 탁지부(度支部) 대신이시고, 민영준(閔泳駿) 대감은 전임 선혜청(宣惠廳) 당상(堂上)인데다 왕후마마께서 아끼시는 척족이십니다. 이런 두 분의 곡식을 무단히 빼앗아 쓰시고도 안 진사께서 무사하리라고 믿으십니까?"

"토끼 사냥이 끝나면 앞장서 달리던 사냥개는 삶기고, 내를 건널 때 요긴하게 쓴 지팡이는 건너편에 이르면 모래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더니, 내가 실로 그 꼴이 되었구나. 이 나라의 대신 척족이라면 오히려 동학당 토벌에 앞장선 나를 누구보다 두텁게 대해야 하거늘, 이 무슨 해괴한 트집인가? 갑오의려 때 동학군 진중에서 뺏어다 군량미로 쓴 곡식을 이제 와서 공무미(公貿米)니 추수곡(秋收穀)이니 하며 내놓으라니 이보다 더한 억지가 어디 있는가? 이만 물러가라. 가서 두 분 대감께 전하거라. 적도들에게 곡식을 빼앗겨 그 군량미를 댄 것도 죄가 작지 않거늘, 오히려 그걸 되찾아 군량으로 쓴 의려장(義旅長)에게 이제 와서 물어내라니, 천고에 어찌 이리 기막힌 일이 있겠는가고."

문밖에서 듣고 있는 중근까지 가슴이 섬뜩해지는 호령이었다. 그제야 상대도 기가 죽었는지 더 말이 없었다. 잠시 방안이 조용하더니 이윽고 두 사람이 무연한 얼굴로 방문을 열고 댓돌 위로 내려섰다. 한 사람은 신천 관아의 아전 같고 다른 사람은 어씨나 민씨네 집사 같았다. 두 사람이 대문을 나서는 걸 보고 중근이 아버지 안태훈에게 물어보았다.

"어찌된 사람들입니까?"

속으로는 대강 짐작 가는 데가 있었으나, 석연치 않은 데가 있어서였다. 안태훈이 아직 성이 다 가라앉지 않은 어조로 받았다.

"가산 용두리 민영룡의 창고에 있던 곡식이 말썽이구나. 송상(松商) 김수민(金壽敏)이 맡겨둔 곡식을 동학당이 뺏어 군량미로 쓰고 있던 것이라기에 아무 걱정 없이 몰수해 포군들을 먹였는데, 이제 와서 그 절반은 정부가 돈을 들여 사들여 놓은 공무미고 절반은 척족 대신의 추수곡이라며 돌려달라니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우선은 신천 아전바치와 민씨네 집사 놈을 꾸짖어 보냈다만 눈치를 보니 쉽게 물러설 것들 같지 않구나."

그리고 미간에 골 깊은 주름을 지으며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중근도 탁지부 대신이니 선혜청 당상이니 하는 말을 들은 게 있어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 안태훈의 말에 얼른 대꾸를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안태훈이 복잡한 속을 툭툭 털어버리는 듯하며 물었다.

"그래, 재령은 잘 다녀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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