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분처럼 살겠습니다"

입력 2009.02.21 04:55

● 번지는 '사랑·감사의 바이러스'
반성 - "가족·이웃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리움 - "한없이 자신을 낮추시던 분"

20일 오전 10시, 흐린 하늘 아래 1만 인파가 서울 명동성당 진입로를 메웠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김 추기경의 마지막 말인 "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를 적은 플래카드가 그들의 머리 위에 나부꼈다.

오전 11시40분 김 추기경의 관이 성당 밖으로 나갈 때, 흰 베일을 쓴 천주교 신자 정 엘리사벳(여·50·서울 대방동)씨가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이렇게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추기경님, 사랑합니다."

김 추기경의 장례미사는 정씨가 4개월 만에 처음으로 참석한 미사였다. 1990년 천주교 신자가 된 뒤 단 한 주일도 미사를 거르지 않던 정씨는 작년 10월 유방암 2기 진단을 받고 여태 성당에 오지 못했다. 정씨는 이날 암 투병 중인 몸으로 칼바람이 부는 성당 마당에 서서 김 추기경을 위해 기도했다. 정씨는 "추기경 선종 소식을 듣고 펑펑 울었다"며 "내 몸이 아무리 아파도 마지막 가시는 길만은 함께 하고 싶었다"고 했다.
"아프기 전에는 남편의 사랑이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았어요. 평소 같으면 '사랑하라, 용서하라'는 추기경님 말씀을 흘려들었을 텐데, 이번엔 마치 제게 직접 하시는 말씀 같았어요. 남편, 가족, 고마운 분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도 추기경처럼 살겠습니다."

이날 장례미사에 참석한 조문객들은 영하의 추위와 짙은 황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옆 사람의 체온으로 저마다 몸을 녹이며 2시간 내내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종교와 학력, 빈부와 귀천, 남녀와 노소의 구분이 무너졌다. 친아버지를 잃은 사람처럼 흐느끼면서, "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라는 추기경의 마지막 메시지를 가슴에 되새겼다.

해진 털모자에 검은색 외투와 고무줄 바지를 입고 온 김복희(여·63)씨는 지난 15년간 명동성당 앞에 좌판을 펴고 묵주를 팔았다.

"언젠가 추기경님이 일부러 걸음을 멈추고 내가 파는 묵주를 사 주신 적이 있어요. 당신께는 좋은 묵주가 여럿 있었을 텐데…. 원래 없는 사람에게 더 잘해주시는 분인데 이렇게 가셔서 너무 아쉽고 벌써부터 그립습니다. 없이 살지만, 나도 남에게 잘하렵니다."
김 추기경이 선종한 뒤, 그가 남기고 간 감사와 사랑,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는 조문객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미움을 녹였다.

천주교 신자인 안모(59·목수)씨는 가족을 한국에 둔 채 혼자 일본에서 일하다, 지난달 가족들 몰래 귀국했다.

안씨는 "지난 연말, 일본에서 모은 돈 660만엔(약 1억원)을 몽땅 떼였다"고 했다. 돈을 은행에 넣는 대신 현지에서 알게 된 한국인 식품점 주인에게 맡긴 것이 화근이었다. 식품점이 망하고 주인이 한국으로 도피했다. 안씨는 "차마 아내에게 '돈 떼였다'는 말을 못해 몰래 들어와서 무작정 찾고 있다"며 "여기 와서 '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라는 플래카드를 보니 '내 돈 가지고 달아난 사람도 언젠가 재기해서 나중에 나를 찾아와 돈을 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두툼한 외투를 입고 장례미사에 참석한 사람들 속에, 얇은 가을 점퍼를 입고 떠는 사람이 있었다. 조본수(53·노숙자)씨는 지난 19일 고향 부산에서 무궁화호 야간열차를 타고 상경해 장충공원에서 밤을 새우고 이날 오전 8시에 명동성당에 왔다. 그는 "추기경님은 낮은 자에게 항상 너그럽고 부드러우셨다면서요. 그동안 자포자기했는데, 비록 이런 처지지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못 줄망정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성실히 살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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