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여검사 바람 매섭네

조선일보
  • 강인선 기자
    입력 2009.02.21 06:50 | 수정 2009.02.21 20:37

    내달 임용검사중 51%가 여성… "봐주기 없고 원칙대로…"
    특수·공안 분야까지 활동 범위 넓혀

    법무부는 다음달 9일자로 신규 임용되는 검사 112명 가운데 58명(51%)이 여성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28일 밝혔다. 동아일보 1월29일자 보도


    이로써 여성검사는 모두 316명이 된다. 전체 검사(1716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8.4%다. 1996년 10명이던 여 검사 수가 2005년 139명으로 급증하더니 4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여검사가 많아지면서 검사 사회도 달라지고 있다. 여검사의 육아휴직 신청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지청에 여검사를 위한 휴게실이 생겼으며 성·가정폭력 이외의 분야로 진출하는 여 검사도 늘었다.

    1998년 설립된 대한민국 여자 검사회(회장 조희진) 전체모임도 거의 불가능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매년 선배 여검사들이 후배들을 환영해주는 모임을 열지만 요즘엔 용인 법무연수원에서 직무교육 받을 때 선배들이 상견례를 하는 정도다.

    법무부는 몇 년 전 여검사용으로 법복 안에 받쳐 입는 셔츠 모양 탑을 만들었다. 법복은 목 부분이 브이(V)자 모양으로 깊이 파여 있어 남자가 입으면 와이셔츠에 넥타이 맨 부분이 드러난다. 그러나 여성용 블라우스 위에 덧입으면 어색하기 때문에 한 여검사의 제안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사법연수원 대강당의 남성 화장실은 2년 전 여성 화장실로 바뀌었다. 원래 남녀용이 따로 있었으나 두 곳을 다 여성용으로 쓰고 있다. 대신 남자 연수생들은 다른 층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지청에 여자 화장실이 없던 것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10년 전만 해도 여검사는 검찰조직 내에서 낯선 존재였다. 부장검사들은 "일 잘하는 여자 검사보다 일 못하는 남자검사를 달라"고 했고, 여 검사와 함께 일하게 된 수사관들은 동료들로부터 "여검사 모시기가 어떠냐"는 농담을 들어야 했다.

    피의자나 참고인 등 사건 관련자들도 조사를 받으러 왔다가 여검사 앞에 앉으면 "검사님은 어디 가셨냐"고 물으며 은근히 무시하기도 했다. 검찰청에 올 땐 잔뜩 긴장했다가도 젊은 여 검사를 보면 갑자기 '미모' 운운하는 실없는 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검찰 주변엔 "여검사가 더 무섭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희진 검사는 "여 검사들은 원칙대로 처리할 것이란 선입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봐주지 않을 것'이라든지 '말이 안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반면 사회적 약자의 경우엔 이들을 더 편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부드러운 접근방식을 권장하는 건 아니다. 박계현 사법연수원 교수는 "검사는 상담사가 아니라 감추고 싶은 사실관계를 파헤쳐야 하는 수사관임을 잊지 말라고 여자 후배들에게 충고한다"고 말했다.

    여검사들의 숫자가 늘긴 했어도 여전히 성폭력, 가정폭력 사건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여검사들은 대부분 "피해자가 여성인 사건에서 여검사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여검사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특수, 공안 등에도 진출하고 있다.

    한나라당정미경 의원은 검사 시절 임신했을 때도 살인사건 현장에 나갔다. 정 의원은 "지휘 검사가 경찰연락을 받고 '전 임신해서 못가니 다른 사람을 보내겠다'고 할 순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사체 검시 같은 '험한 일'은 사전에 임신사실을 알려 다른 검사를 대신 보내기도 한다.

    작년까지 서울지검 검사로 일했던 김학자 변호사는 만삭일 때도 일주일씩 책상 앞에 앉아 자면서 야근하고 양수가 터진 후에도 7시간을 더 일하다가 병원으로 갈 정도였다. 그는 "특수부에 가고 싶었는데 선배 검사가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여검사를 안받는다'고 할 때 좌절했다"고 말했다.

    여검사들의 공통적인 고민은 인맥관리에 약하다는 점이다. 남자검사들은 고교·대학교 선후배 등으로 끈끈하게 엮여 있지만 여자들은 그런 경우가 드물다. 특히 20~30대 기혼 여검사들은 육아에 들어가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인맥관리에 들이는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다.

    검찰 내의 악명 높은 술 문화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최근 부산지검으로 발령을 받은 초임검사 6명은 꽃바구니를 선물로 받았다. 폭탄주 환영회와는 다른 인사였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한 여검사는 "남녀를 불문하고 검사들 사이에서도 가족중시, 자기관리의 문화가 자리잡아 이전처럼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했다.

    여검사들은 외부에서의 인맥확대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남자 검사들은 선후배와 동기를 통해 다양한 분야로 인맥을 넓혀가는 데 비해 여성들에겐 "선배 언니가 저녁 사주고 2차, 3차 같이 가며 끈끈한 정을 쌓는 문화"가 없다. 그러나 여검사들이 조직 내외의 네트워킹에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 역설적으로는 청렴의 이유가 된다는 지적도 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