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역정 한번 안 내신 천사였습니다"

조선일보
  • 박원수 기자
    입력 2009.02.20 03:05

    고향 사람들이 전하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추억
    가야금 연주자 이미경씨, "작은아버지라 어리광도 피웠죠"
    교장으로 있던 성의여고 졸업생 전원 초대해 자장면 사주기도

    "제가 고(故)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을 '작은아버지'라 부르자 다른 사람들이 놀라지 뭡니까? 추기경께서 '야(이 아이)가 제 형님의 딸과 마찬가지니 제가 작은아버지 맞지요'라고 하시자 그제서야 사람들이 이해를 했습니다."

    대구에 사는 가야금 연주자 이미경(李美敬·51)씨는 고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추억이 남다르다. 그의 말처럼 '작은아버지'나 다름 없이 대했다고 했다.

    대구가 고향인 김수환 추기경은 형님인 고(故) 김동환 신부가 사목 활동을 했던 대구·경북지역 사람들과 아주 친밀한 교분을 맺어 왔다. 이씨와 같은 추억을 가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김동환 신부는 오랜 기간 대구결핵요양원(경북 고령군으로 옮기면서 밀알의 집으로 이름을 바꿈) 원장으로 있으면서 결핵환자들을 위해 헌신해 왔다. 김동환 신부가 83년 선종할 때 당시 로마 주교회의 참석차 임종을 보지 못했던 김 추기경은 이후 형의 기일(忌日)에는 거의 빠짐없이 대구와 고령으로 내려왔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가야금 연주자 이미경씨의 연주를 감상한 뒤 이씨의 손을 다정스럽게 잡고 있다. /이미경씨 제공
    김동환 신부의 일을 1979년부터 도왔던 이미경씨는 "김 추기경님께서 형님이 계시던 대구와 고령에 자주 내려오셔서 형님 일을 남 모르게 많이 도우셨다"며 "그 일이 인연이 돼서 김 추기경님을 수십 번 뵐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84년인가 처음 뵀을 때는 우리와 다른 세상에 살고 계신 분처럼 느껴져 어려웠으나 그 후로 자주 뵙고 하면서 어리광도 피우고 했지만 역정 한 번 안 내시고 너그러이 받아 주신 분이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셨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10년 전 추기경의 세례명인 스테파노 축일(祝日) 때 장애인 시설인 경북 고령의 성요셉재활원에서 축하미사를 집전할 당시의 에피소드도 그런 면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사례다. 당시 미사 중 장애아들이 이러저리 뛰어 다니느라 매우 분위기가 산만했다는 것.

    "추기경님의 미사가 끝난 뒤 제가 가야금 연주를 시작하자 조금 전 그렇게 시끄럽던 장애아들이 조용히 한 채 가야금 연주를 들었어요. 이를 보신 김 추기경께서 '내가 미사 드릴 때는 시끄럽던 아이들이 미경이가 연주하니 조용하네'라고 농담을 건네셨습니다."

    이씨에게는 지난 14일 밸런타인데이 때 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 추기경을 만난 게 마지막이 됐다.

    "병실을 찾아가 초콜릿을 드렸죠. 또 물을 드시라 했는데 고개만 저으시고 힘없이 누워만 계셨습니다. 마지막이 될 줄 알았더라면 목이라도 축이시도록 했을 텐데…"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자주 찾아가 노래도 불러 드렸다는 이씨는 "추기경께서는 '과수원길'이나 '엄마야 누나야'와 같은 동요는 물론이고 '향수'와 '애모'와 같은 대중가요도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이 1955년에서 56년까지 1년 6개월여 동안 경북 김천 성의여고 교장으로 있었던 당시 그로부터 수업을 들었던 졸업생들의 추억도 남다르다.

    대구에 사는 유순애(여·71)씨는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교장선생님이 학생들과 격의 없이 장난을 치고 유머도 풍부하셨죠. 또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수업까지 하셨다"고 회상했다. 졸업식날 김 추기경은 사택으로 졸업생 45명 모두를 불러 당시에는 귀한 자장면을 사주셨다고 했다.

    "한 명 빠짐없이 교장 사택에서 밤새워 이야기꽃을 피운 것은 아마도 제 생애 최고의 추억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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