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인간의 길에서 신의 길을 보다

입력 2009.02.19 23:01 | 수정 2009.02.20 13:09

'광장'보다 '행렬'의 혁명
그들은 무엇이 목마른가

박은주 엔터테인먼트부장

절대 정권의 시대, 그는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 유익한 일인가" 하고 물었다. 박종철군이 죽임을 당했을 때, "지금 하느님께서는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물은 것처럼 '네 아들, 네 제자, 네 국민인 박종철군이 어디 있느냐'고 묻고 계십니다"라고 했다. 87년 6·10 민주화항쟁 때는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저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를 밟고 가십시오"라고 했다.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에서는 "국가보안법은 개정이 필요하고, 폐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2005년에는 사학법 개정에 반대한다는 뜻을 표하며 "군종 신부들 얘기로는 '새로 군에 간 젊은이들에게 주적이 어디냐'고 물으면 '미국'이라 한다더라"고도 했다. 이 말을 동시에 했다면, 그 사람은 진보적일까, 혁명적일까, 객관적일까, 보수적일까.

이런 말을 한 분은 바로 얼마 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다. 진보라 자처하는 인사들은 사학법·국보법에 대한 김 추기경의 입장을 두고 생전에도 "보수적으로 변했다"고 비난하거나 막말을 해왔고, 추기경의 선종 이후 전 국민적 추모열기가 아니꼬운 눈치다. 비정규직 문제에 나서지 않았다, 보수정권과도 친했다 등의 이유를 들면서 "지금 전 국민적 추모는 과하다"고 얘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진보 논객 진중권씨가 나서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이른바 비판에 대하여'란 글을 올리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사안에 따라서만 엄밀히 비판하라'고 말했다.

문득 이 말이 생각났다. '주여,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둘이서 나란히 하기에는 좁은 길입니다.'(앙드레 지드 '좁은 문') 신앙심 깊은 알리사가 '남녀의 사랑'이 진정한 신앙과 동반할 수 없다고 느끼며 일기에 적은 말이다.

정말 그 문이 좁은 것일까. 인간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힘든 게 아니라, '좁은 눈'으로 세상을 보기에 그 문이 좁아 보이는 게 아닌가.

추기경은 폭압의 시대에 인권을 말했고, 좌파의 시대에 균형을 말했다. 물론 그렇게 말한 사람은 김 추기경만이 아니었다. 불의에 대항한 '인간의 길'을 걷는 이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는 악행의 피해자를 돌보면서도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들을 손가락질하지 않았고, 점잖게 깨닫기를 바랐다. 극한으로 치닫는 시대에 균형을 잡아주려고 했지만,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인간들을 폄하하지도 않았다. 그는 '인간의 길'을 걸으며 동시에 '신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 이를 '인간의 눈'으로 평가해서, 진보적이다 보수적이다 하고 평가하는 것은 참 부질없어 보인다.

그건 그동안 우리를 길거리로 내몬 '광장의 논리'다. 그동안 광장은 긍정적 의미이든, 부정적 의미에서든, 그 사안의 무게가 무거웠든, 그렇지 않든 '폭발'하는 곳이었다. 1987년 6월이 그랬고, 지난해 광우병 시위가 그랬고, 밀레니엄 행사가 그랬고, 해마다 열리는 제야행사가 그랬다. 광장 속 인파는 언제나 '외치고' 있거나, 목말라했다. 쟁취해야 할 것이 많은, 인간의 고뇌를 가득 진 인간들의 장소였다.

추기경을 추모하는 그 많은 인파가 이 추위 속에 그렇게 고요히 '줄'을 서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광장형 인파가 아닌, 행렬을 이룬 인파를 본 것이 언제였던가. 앞으로 어떤 죽음 앞에서 이렇게 긴 줄이 다시 생겨날 수 있을까. 그 행렬 안에는 보수도, 진보도, 가진 자도, 없는 자도, 참말만 하는 자도, 거짓을 말한 자도 다 있다. 그들은 그 행렬 안에서 조용히 인생을 돌아보고, 아쉬움을 느끼고, 진정한 신앙심을 돌아볼 것이다. 때론 광장보다 행렬에서 진정한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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