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이한우의 역사속의 WHY] 고려 말 '忠'자 돌림 王들

조선일보
입력 2009.02.14 03:10 | 수정 2009.02.14 20:28

원나라의 부마국되면서 '忠'자 써
왕위 둘러싸고 부자간 싸움 다반사

1398년(태조 7년) 8월 26일 밤부터 27일 새벽 사이에 일어난 정변, 속칭 '제1차 왕자의 난'의 가장 큰 피해자는 태조 이성계다. 고려 조선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장수로 꼽히고도 남음이 있는 이성계가 하루 아침에 자기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긴 못난 아버지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말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즉 아들이 무의식 중에 어머니를 차지한 아버지에게 경쟁심과 분노를 느낀다는 그것이 바로 이 사건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제1차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그 사건은 실은 왕자들끼리의 난이 아니라 부자(父子)의 난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니라 (계모) 어머니에게 잘못했다는 이유로 연산군이나 광해군을 내쫓고 소위 반정(反正)을 했다고 자부했던 조선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아버지를 내쫓고서 무탈할 수 있었을까? 물론 지금 본 것처럼 정종이라는 완충지대를 만들고 또 '부자의 난'을 '왕자의 난'으로 둔갑시키는 등의 다양한 정치 조작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 덕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가 조선 초로, 여전히 고려의 정치 풍토가 영향을 미친 때문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성계나 이방원이나 아직은 '고려 사람들' 아니었겠는가?
실제로 고려 후반기가 되면 왕위를 둘러싼 아버지와 아들의 싸움은 다반사(茶飯事)였다. 이렇게 된 데는 유학(儒學)이 군신관계에서만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쳤을 뿐 왕위 계승문제는 적나라한 권력 투쟁 논리에 그대로 내맡겼던 고려의 정치문화도 한몫 했다.

고려 23대 고종(高宗)은 한편으로는 무신통치를 끝낸 임금이면서 동시에 고려를 몽골의 보호국으로 전락시킨 임금이기도 하다. 특히 그를 이어 즉위한 원종(元宗)은 원나라 황제의 딸들을 맞아들임으로써 고려를 원나라의 부마국(駙馬國-사위나라)으로 전락시킨 장본인이다. 원나라를 모시기 시작한 첫번째 임금이라 원종(元宗)이라 했을 것이다. 자존심을 잃고 대내외 안정은 얻었다.

이후 충(忠)자 돌림 임금들이 들어서게 된다. 15년을 재위한 원종에 이어 원나라 황제의 딸 홀도로게리미실(제국대장공주)과 혼인한 25대 충렬왕(忠烈王)은 질투심 강한 왕비를 제외하면 누구도 두려워할 게 없었기 때문에 34년간 무탈하게 왕위를 지킬 수 있었다. 한 차례 파란을 겪기는 했다.

충렬왕 23년(1297년)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원나라에 머물던 세자 익지례보화(훗날의 충선왕)가 귀국해 어머니를 위한 피의 복수를 벌인다. 심지어 아버지가 총애하던 무비를 비롯해 수십명의 아버지 측근들을 제거해버렸다. 세자는 '원나라 황제의 외손자'라는 자부심으로 황제의 사위에 불과한 아버지를 무참히 짓밟았다. 이듬해에는 8개월 동안이긴 하지만 아버지를 내몰고 왕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1308년 충렬왕이 죽자 세자는 '다시' 왕위에 오른다. 왕위에 올라 가장 먼저 한 일이 무비를 죽인 뒤 아버지를 위로한다며 들여보냈던 과부 출신의 숙창원비 김씨를 자기 부인으로 삼은 것이었다. '황제의 외손'인 26대 충선왕(忠宣王)은 부인인 보탑실련(계국대장공주)도 외면하고 야속진이라는 평범한 몽골(혹은 여진) 여인과의 사이에서 난 둘째 아들에게 왕위를 넘긴다. 그가 1313년 왕위에 오른 27대 충숙왕(忠肅王)이다.

그런데 충선왕이 죽고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라 재위기간(5년) 내내 원나라에 머물던 충선왕이 귀국종용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아들 충숙왕에게 선위한 것이기 때문에 권력은 여전히 충선왕에게 있었다. 충선왕은 고려 사람이 아니라 원나라 사람이었다. 훗날 충선왕은 원나라 황실의 권력관계 변화로 티베트로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는다.

한편 충숙왕은 재위 3년째인 1316년 쿠빌라이의 손자 야선첩목아의 딸 복국장공주와 혼인함으로써 황실과의 유대를 강화해 나름의 권력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미 충숙왕에게는 부인이 있었다. 이미 충선왕에게 딸을 후궁으로 들여보낸 홍규의 다른 딸이 그의 부인이었다. 충선왕 충숙왕 부자는 동서(同壻)이기도 했다.

덕비(德妃)로 책봉된 홍씨와 충숙왕 사이에서 28대 충혜왕(忠惠王)과 31대 공민왕(恭愍王) 형제가 태어난다. 충숙왕과 충혜왕 부자는 치열한 암투로 각각 두 번씩 왕위를 오르내려 복위(復位)라는 말을 낳게 한다. 충숙왕(1313~1330년) 충혜왕(1330~1332년) 충숙왕 복위(1332~1339년) 충혜왕 복위(1339~1344년).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눠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이어 충혜왕의 두 아들 29대 충목왕과 30대 충정왕으로 잠시 내려갔던 왕위는 1351년 31대 공민왕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성계나 이방원 모두 공민왕 때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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