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웃으며 강간 후 "받아들이라"… 좌파는 왜?

    입력 : 2009.02.14 03:10 | 수정 : 2009.02.14 10:09

    "조직을 위해" "큰 뜻 위해"… 성폭력 피해 때마다 '은폐·묵인 카르텔'
    거부하면 "철저한 운동관 부족하다"
    문제 터지면 "음모 있다" 몰아붙여

    "피해자와 (민주노총) 조합원, 국민들께 반인권적·반사회적 성폭력 범죄 발생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진영옥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본지 2월 10일자 보도

    "항상 사건이 이런 식으로 일어나죠. 웃으면서. 웃으면서 강간하고. 내가 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겠는 거는 '통이 커야지, 사람이. 그런 거에 대해서 이러면 어떻게 살겠어. 큰 문제를 생각해야지' 이런 거. … 그래서 거부하면 '아직 철저한 운동관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얘기를 해요. 무성화(無性化)가 돼야 된다는 얘기지."(92학번 운동권 여성)

    "남자 선배들이 운동권의 도덕성이라든지 그런 얘길 하면서 피해자 여성한테 '네가 가해자 만나 둘이 조용히 해결해라' 이렇게 막 종용하는 거야. 그러니까 대부분의 피해를 받았던 여성들은 학생운동 한 지 5년, 6년 됐더라도 견딜 수가 없어요. 대부분 다 운동을 떠나거나 살아남은 애들은 진짜 상처투성이지."(90학번 운동권 여성)
    이화여대 여성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전희경씨가 작년 출간한 '오빠는 필요 없다'(이매진)에 나오는 운동권 여성 성폭력 피해자들의 증언이다. 동지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운동사회의 성폭력을 전씨는 '은폐와 묵인의 카르텔'로 규정했다.

    전씨는 "운동권에는 내부의 성폭력을 묵인·은폐·재생산하는 독특한 논리와 체계가 작동해 왔다"고 밝혔다. 사건을 은폐하고 묵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운동사회에서 추방하는 고유의 메커니즘이 존재해 왔다는 얘기다. 그는 이런 메커니즘을 가능하게 만드는 세 가지 대표적인 명분으로 ▲대의를 위해 참으라는 '대의론' ▲위기에 처한 조직(운동권)을 보위(保衛)하기 위해 덮어야 한다는 '조직보위론' ▲반대 세력이나 프락치의 음해라고 보는 '음모론'을 제시했다.

    ◆대의론: "큰 뜻을 위해 피해를 감수하라"

    운동사회 내부에서 성폭력적인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는 많은 경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부분은 운동의 대의(大義)를 위해 감수해야 할 것으로 취급됐다.

    이번 민노총 성폭력 사건과 관련, 김종웅 변호사와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임태훈 여성의전화 전 정책위원 등 3인이 피해자 A씨를 대리해 밝힌 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김○○이 A씨의 자택에 침입해 성추행과 강간미수행위를 저질렀음에도 '이명박 정부와 싸우려는 조직의 상처'를 운운하며 피해자와 그 대리인들을 조직적으로 압박했다." "'이런 사건이 알려지면, 조·중·동에 의해 대서특필되면 조직이 심각한 상처를 받는다는 것의 반복이었다. 민주노총은 피해자와 피해자의 대리인에게 지속적인 압박을 해 왔다."

    2002년 대선 기간 중 발생한 개혁당 수련회 성폭력 사건의 해결 요구에 대한 유시민 집행위원 '조개론' 발언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2003년 4월 유 의원은 당시 사건을 언급하며 "해일(海溢)이 일고 있는데 조개를 줍고 있다"고 비판했다.

    1년 뒤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 신분으로 나선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당시 집행위원 회의에서 당내 여론에 대한 회의를 했는데 당내의 작은 일로 회의 시간이 소모되는 것을 두고 '우리가 해변에서 조개껍질 들고 놀고 있는 아이와 같다'고 말한 것이 왜곡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여성학자들은 "무엇이 (해일만큼) 중요한 문제인지, 성폭력 사건은 얼마나 (조개줍기만큼) 사소한 문제인지에 대한 (유시민씨의) 위계적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조직보위론: "우리의 치부를 적에게 알리지 말라"

    위기에 빠진 조직을 적(敵)의 공격에서 지키기 위해 성폭력 사건이 조직 밖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 보는 논리가 조직보위론이다. 여성으로서의 문제의식은 한낱 '배부른 소리'로 치부된다. 성폭력을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가 아니라 조직의 명예 실추로 보는 시각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이들이 성폭력 사건을 감추고 축소하면서 내거는 명분이 '운동권은 도덕성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론이다. 운동권은 (사회의 다른 조직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월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가해자에 대한) 사법 처리는 운동사회의 치부(恥部), 조직의 치부를 공권력에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나오고 결국 성폭력 피해자가 문제를 '조직 내에서' '개인적으로' '조용히' 해결할 것을 종용받는다는 것이다. 함구령도 내려진다.

    "진보를 지향하는 운동권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함구령이 내려지고 주변 동료나 선배들로부터 '둘이 조용히 해결하라'는 요구를 받게 되는 것이다."('오빠는 필요 없다' 중) "네가 안고 넘어가라" "덮고 가자" "(가해자가)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지 않나" 같은 설득 작업이 뒤따르게 된다.

    이번 사건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오창익 사무국장은 "민주노총과 A씨의 소속 연맹 차원에서 A씨에 대한 집중적인 설득 작업이 진행됐다"면서 "설득 작업의 주요 내용은 외부의 지원을 받지 말고 조직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변혜정 서강대 양성평등상담실 상담교수는 "성폭력의 자행은 물론 사건 은폐와 축소 시도 같은 행위는 남성·여성과 같은 물리적인 성별에 의하기보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폭력적인 남성성(masculinity)에 따라 나타난다"고 말했다.

    2006년 불거진 '시민의 신문' 이형모씨의 성추행 사건에서 피해 여성이 사건의 전말을 공개하려 하자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이 대표의 개인적인 문제로 무마하려 했다는 진술이 나왔던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시민의 신문 관계자들은 "이사진으로 있던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피해자를 불러 '이 전 대표가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자'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성폭력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지낸 김지혜씨는 "운동 조직 내부의 성폭행 피해 여성들은 이중의 부담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성폭행 피해의 후유증은 물론 문제의 공개로 조직이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을 경우 주변에서 폭로자라며 매도당하고 비난받는다는 것이다.

    ◆음모론: 끊임없는 소문… 본질은 어디에

    음모론은 성폭력 문제를 정치적 대립과 갈등의 빌미로 보는 입장이다. "모(某) 정파가 계파 이익을 위해 문제를 터뜨렸다"는 식의 반응이다. 성폭력 사건 자체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지 못하고 음모론에 대한 반(反) 음모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와 사건의 본질이 실종되는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뀌고 가해자는 정치적 희생양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계속되는 논란 속에 피해자의 인권과 명예는 산산이 부서진다.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측 대리인들은 "기자들의 복수 증언과 전언에 따르면 다수의 민주노총 간부들은 최소 3~4주 전부터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 술자리 등에서 기자들에게 여과 없이 말하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소문을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2004년 민주노총 공공연맹 소속 노조의 부위원장이 한 여성 간부를 성희롱한 사건에서도 피해자의 주장에 대해 가해자는 "2년이 넘은 일을 가지고 이제 와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라며 "(피해자가) 그동안 친한 관계를 유지하다 갑자기 문제를 확대시킨 것은 현 집행부와 자신을 조직적으로 음해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1999년 발생한 보건의료노조 성추행 사건에서도 음모론이 나왔다. 당시 민노총 게시판에는 사건과 관련, '성폭력 사건이 조직 내 암투의 산물임을 증명하겠다'며 '보건의료노조를 망치는 핵심그룹' '지역맹주주의' '○○대 인맥의 과거와 현실' '권력 내부의 암투' 등 특정인의 실명을 거론하며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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