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은 피부가 좋고 다크 서클도 심하지 않았어요. 가릴 게 없으니 화장하기 좋은 얼굴이죠. 클린턴 전 대통령은 피부상태가 좋지 않고 붉어서 화장하기 어려웠고요."
미국에서 활동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제인 최(49)는 '자연스러운 화장'으로 유명하다. 작년 여름 '포천', '롤링 스톤즈', 'GQ'같은 잡지 표지에 실린 오바마 얼굴은 모두 그가 메이크업을 했다. 각 잡지 편집장들과 사진작가 벤 베이커와 피터 양이 모두 최씨가 화장을 해주길 원했다.
작년 6월 오바마가 사실상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직후 최씨는 오바마가 유세 중이던 노스캐롤라이나주로 날아갔다. 여러 잡지에 쓸 사진을 한꺼번에 찍느라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오바마는 진지하고 성실했다. 의자에 앉으면서 "당신 모습과 똑같이 화장해달라"고 해 분위기를 부드럽게 했다.
바쁜 일정에 쫓기는 정치인들은 화장할 시간을 많이 주지 않는다. 최씨가 화장을 하는 사이 브리핑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짧은 시간 내에 가장 그 사람다운 얼굴을 만들어줘야 한다. 남자 정치인들은 7~8분이면 화장을 끝낼 수 있다. 여자들은 최소 40분은 걸린다. 최씨는 "원래 피부색에 맞춰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살려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이 자연스러움이 유명 사진작가들이 최씨와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이유다. 사진작가 마틴 쉴러는 잡지 뉴요커에 실릴 클린턴 대통령 사진을 찍을 때 백악관의 전속 분장사를 마다하고 최씨를 불렀다. 사진작가 고(故) 리처드 애비던도 그와 작업하는 걸 좋아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뿐 아니라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도 그에게 얼굴을 맡겼다. NBC 방송의 뉴스앵커 탐 브로커의 화장도 맡았다.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와 마이클 무어, 영화배우 이사벨라 로셀리니, 힐러리 스웽크, 벤 애플렉, 수잔 서랜든, 샌드라 오, 데이비드 듀코브니 등의 메이크업도 했다.
평소 화장도 안 하던 사람이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건 우연이었다. 최씨는 대학 졸업 직후인 1983년 유학생과 결혼해 미국으로 가 뉴욕에서 살았다. 석사를 마치고 현지에서 취직한 남편은 1993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전업주부로 살다가 홀로 남겨지자 아홉 살 난 딸과 여섯 살 된 아들을 키울 일이 막막했다. "제가 뭘 잘못한 건 아니었지만 결혼한 지 10년 만에 혼자가 돼 귀국하려니 왠지 자존심이 상했어요. 부모님께 1년만 공부해보고 싶으니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했지요."
최씨는 간호학을 공부해보기로 결심했다. 뉴저지주에 있는 대학의 간호학과에 지원서를 내 합격했다. 입학을 기다리고 있을 때 우연히 잡지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됐다.
"메이크업을 배워두면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학원을 찾아가보니 너무 기초적인 걸 가르치더라고요. 그 정도 화장기술로 돈을 벌 순 없을 것 같았어요. 남들이 안 하는 일이 뭐 없을까 고민하다가 특수분장을 생각하게 됐어요."
특수분장은 멍들고 찢어진 상처, 화상, 대머리를 재현하는 기술이다. 특수분장 개인레슨을 하는 전문가를 만났더니 그는 그림을 그려보게 하고 찰흙으로 무언가 만들어보게 한 뒤 "재능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두어달 배우는 수업료가 5000달러였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포기하려는데 그 전문가가 "혹시 한국어를 하느냐"고 물었다. 한국인이 특수분장을 배우러 오기로 했는데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통역을 해주는 대신 수업료는 3700달러만 냈다.
레슨이 끝난 후 최씨는 일감을 얻기 위해 배우들끼리 보는 정보지에 광고를 돌렸다. 독일감독이 연락을 해왔다. 처음 맡은 일은 목에 칼이 들어가 상처가 벌어지고 피가 줄줄 흐르는 모습이었다. 반신반의하던 감독은 그가 배우의 목에 만들어놓은 생생한 상처를 보고 대만족이었다.
최씨는 "그때 어쩌면 이 일로 먹고 살 수 있겠다 싶어서 간호사가 되려던 계획은 포기했다"고 했다. 초기엔 부지런함에 모든 것을 걸었다. 보수가 박하고 날씨가 나쁘고 시간이 촉박해도 군소리 없이 최선을 다했다. 특수분장은 물론이고 보통 메이크업도 다 했다. 그렇게 몇 년을 하니 감독과 사진작가들이 "다들 싫다고 해도 제인은 와서 해줄 거야"라며 그를 찾았다.
2년 가까이 경력을 쌓았을 무렵인 1996년 NBC 방송의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의 분장을 맡게 됐다. 분장사가 갑자기 해고돼 대신 나갔다가 고정적인 일자리를 얻었다.
"원래 했던 분장을 지우고 2분30초 만에 다른 분장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갑자기 분장사가 바뀌어 긴장했던 출연자는 제가 일하는 걸 보고 마음에 든다면서 계속해달라고 해서 자리를 잡았지요." 최씨는 2년 전 영화 촬영 일을 하는 이태리인 안토니오 폰티와 재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