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영혼이 있을까

조선일보
  • 조정훈 기자
    입력 2009.01.31 00:02 | 수정 2009.01.31 17:29

    군포 살해범 강호순, 여성 7명 연쇄살인 자백
    범인“넷째 아내 잃은후 여성 보면 살인 충동”
    유영철과 70년생 동갑… 경찰 조롱도 빼닮아

    사진 속에서 그는 선하게 웃고 있다. 그 얼굴에서 7명의 부녀자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연쇄살인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동안 이웃사람들이 입을 모아 "친절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증언했던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는 매력적이라 할 만큼 준수한 외모와 선량한 미소로 여자들을 차례차례 차로 유인해 짐승의 욕구를 채웠다. 그리고는 모조리 목을 졸라 죽였다. 시체는 자기 집 근처 벌판과 야산 이곳저곳에 파묻었다. 살인극이 끝나면 그는 다시 싹싹한 30대 동네 청년으로 돌아가 태연하게 트럭을 몰고, 가축을 기르고, 스포츠마사지사 일을 했다. 그는 인간의 몸을 빌린 사악한 악마였다.

    경기 군포시 20대 여성 살해 혐의로 지난 24일 붙잡힌 강호순(39)이 30일 오전 경찰에서 지난 2006년 12월 이후 지금까지 경기 서남부 일대에서 실종된 부녀자 7명을 모두 자신이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지난 2004년 7월, 20명을 살해하고 붙잡힌 유영철(39), 2006년 13명을 살해한 정남규(40) 이후 또다시 터진 연쇄살인사건이다.

    경찰은 "강의 리베로 트럭에 있던 점퍼에서 찾아낸 혈흔이 작년 말 수원에서 실종된 주부 김모(당시 48세)씨의 DNA와 일치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유전자 감식 결과를 토대로 강을 추궁해 자백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피해여성 7명 가운데 6명의 시신을 수습하거나 암매장 현장을 확인했다. 강이 2007년 1월 살해한 노래방 도우미 김모(당시 37세)씨를 묻었다고 진술한 공터에는 현재 퍼블릭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전형적인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피해자들을 스타킹 등으로 목 졸라 살해하고 옷을 벗긴 뒤 암매장했다. 강은 2007년 1월 3~7일 불과 닷새 사이에 3명을 살해하기도 했다. 노래방에서 3명, 한적한 버스정류장에서 4명을 유인했다. 번듯한 외모와 말솜씨로 피해자들을 유인한 것은 1970년대 미국에서 30여 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Bundy)를 연상케 한다.

    연쇄살인범(serial killer)이라는 말은 1975년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심리분석관 로버트 레슬러(Ressler)가 처음 사용했다. 연쇄살인범들의 특징은 반항할 힘이 없는 여성과 어린이,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강호순 역시 약한 여성들만 공격했다.

    강은 경찰에서 "2005년 화재로 네 번째 아내를 잃은 뒤 1년여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전국을 방황한 뒤 여자들을 보면 살인 충동을 느꼈다"며 "1차 범행을 한 뒤에는 자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은 "믿을 수 없는 주장"이라는 의견이다. 죄의식 없이 잇단 살인 행각을 벌인 것은 '사이코패스(psychopath)' 즉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스포츠마사지사로 일한 강은 자신이 일하던 사우나에서 붙잡혔다. 최근 2년간 살인행각을 벌이는 동안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강이 살던 집에는 '부동산 경매 컨설팅'을 비롯한 부동산 경매 관련 책자가 여러 권 있었다. 공인중개사나 부동산 관련 업종에 도전하기 위해 준비했던 흔적으로 보인다. '교통사고의 법률 지식'이라는 책도 있었다.

    어떻게 살아왔나

    강호순은 1970년 충남 서천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5남매 중 셋째다. 서천에서 초·중등학교를 다닌 뒤 1989년 충남 부여의 모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강의 고교 생활기록부에는 "용모가 단정하고 성실하다"고 적혀 있었다. 학업 성적은 중상위권이었다. 부사관으로 군에 입대했던 강은 휴가 기간에 소를 훔치다 붙잡혀 불명예 제대했다.

    강은 1992~2005년 사이 네 번 결혼을 했다. 아들 셋이 있다. 22살 때 결혼한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 16살과 14살 난 두 아들을 얻었고, 두 번째 부인이 낳은 막내(8살)가 있다.

    강은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2년여 트럭 운전을 했고, 순대국집을 운영하다가 불이 나서 문을 닫기도 했다. 네 번째 부인과는 마사지업소를 직접 운영했다. 강은 한때 안산 반월저수지 인근에서 개와 닭을 키웠다. 강은 주위사람들에게 "개를 직접 잡아서 내다 팔았는데, 그러다 보니(살생을 계속 하다 보니) 내 눈동자가 이상해지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2006년부터는 수원 당수동에 축사를 빌려 형과 함께 소와 돼지 30여 마리를 키웠고, 양봉(養蜂)도 했다.

    3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금곡동 천변에서 경찰이 2007년 1월 7일 강호순이 암매장한 연모(여·당시 20세)씨의 시신을 찾고 있다.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유영철과 닮은꼴

    강은 '희대의 살인범' 유영철과 1970년생 개띠, 동갑내기다. 나이 말고도 둘은 비슷한 점이 많다. 유영철은 부모의 이혼과 자신의 이혼 등 두 번이나 이혼으로 인한 상처를 받았다. 마사지사였던 부인과의 이혼은 유영철이 나중에 마사지사들을 죽이는 계기가 됐다. 유영철의 이야기는 작년 2월 개봉한 영화 '추격자'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유영철은 2006년 사형이 확정됐지만, 형이 집행되지 않아 아직 복역중이다.

    강은 3번의 이혼을 경험했다. 여자에 대한 부정적인 가치관 때문에 여성에 대한 공격적인 성향이 생겼을 것이라고 분석하는 범죄심리학자들도 있다. 그의 가족들은 "두 아들 양육 문제로 싸움이 잦았고, 그 때문에 이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은 작년 12월 19일 살해한 뒤 암매장한 A씨의 손끝을 잘라냈다. 작년 11월 살해당한 주부 김모씨도 30일 사체를 발굴한 결과 손끝이 훼손돼 있었다. 증거를 남기지 않겠다는 치밀한 계획이었다. 유영철도 시신의 지문을 없애기 위해 손가락 끝을 칼로 도려냈다.

    경찰을 대하는 태도도 비슷했다. 30일 자백을 하기 전까지 강호순은 경찰의 여죄 추궁에 "증거를 대라. 그러면 자백하겠다"고 버텼다. 다분히 경찰을 비꼬는 행동이었다. 유영철은 경찰이 초동수사를 잘못 했다고 지적했다. 유영철은 "범행 현장에 내 다리털이 떨어져 있었던 것을 경찰이 놓치지 않았더라면 나를 더 일찍 잡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풀리지 않는 의문

    강의 행적을 보면 여러 의문점이 남는다. 일부러 증거를 남겨 놓은 듯한 대목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강은 자신의 집 앞 공터에서 범행에 사용했던 차량인 에쿠스와 무쏘를 모두 불태웠다. 경찰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해석하지만, 사실 "내가 범인"이라고 공표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였다. 게다가 강은 차 두 대를 불태우고도 자신이 일하던 사우나에 출근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이 연행할 때도 저항 없이 순순히 따라갔다.

    강은 A씨를 살해한 뒤 은행에서 70만원을 피해자의 카드로 찾다가 꼬리를 잡혔다. 강은 앞서 범행에서는 피해자의 카드로 돈을 뽑은 적이 없었다. 손가락에 콘돔을 끼기는 했지만, 돈 70만원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강은 자신의 축사에 있던 리베로 트럭은 불태우지 않고 남겨뒀다. 트럭에 있던 점퍼에서 나온 혈흔이 두 번째 범행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30일 오전 경기 안산 성포동 야산에서 경기경찰청 과학수사대가 군포 여대싱 납치 살해범인 강모씨가 추가로 살해해 암매장한 김(48)모 여인의 사체를 발굴하고 있다. 군포 여대생 납치 살해 피의자 강씨는 지난 2006년 12월부터 2008년 12월 사이 경기 서남부 권에서 연쇄적으로 실종된 7명의 부녀자를 강간 및 강도살인 후 암매장 했다고 자백했다. /정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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